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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토마스 크레치만 - 독일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기록한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장훈 감독은 힌츠페터를 바탕으로 만든 독일 기자 ‘피터’ 역할을 맡을 배우로 토마스 크레치만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에서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연주를 듣고 그를 살려주는 독일 장교 호젠펠트는 참혹한 전장에서도 지지 않은 인간애를 상징했다.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와 호흡을 맞춘 그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작품 속 각인된 제복의 이미지 대신 편안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그는 격의 없는 대화 사이로 작품을 대하는 자신의 방법론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더니 <택시운전사>의 배우들과 촬영장 뒤의 모습을 열심히 찍더라.

=인스타그램은 4개월 전쯤 시작했는데,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처럼 재밌다. 사진들은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거다. 촬영 때 장훈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송강호 배우의 근사한 사진도 많다. 오늘 찍은 사진도 있다. (송강호, 유해진, 장훈 감독, 박찬욱 감독 등을 찍은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장훈 감독 사진은 진짜 마음에 든다.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 박찬욱 감독이 촬영장에 왔었는데 기회가 되면 같이 작업하고 싶다. 박찬욱 감독도 내 마음을 잘 안다. 그래도 기사에는 쓰지 말기 바란다. (웃음)

-<택시운전사>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처음 에이전시에서는 좀 힘들 것 같다고 답변했다가 이후 출연하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에이전시가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나는 몰랐다. 조금은 과장되게 전달된 면이 있는 것 같다. 에이전시에서 한국영화 대본이 들어왔는데 한번 읽어보겠느냐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바로 감독과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훈 감독이 LA에 와서 영화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설명해줬다. 감독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이 영화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지점이 가장 크게 와닿았나.

=사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이 놀랐다. 영화 출연을 계기로 알게 됐고, 널리 알려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선택한 건 대본의 힘이 가장 컸다. 대본을 보면 이 영화가 완성됐을 때 보고 싶은 영화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항상 대본을 보고 작품을 결정한다. 내가 맡을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라는 캐릭터가 어떤지는 그 후의 문제다. 내 역할이 어떤 캐릭터인지보다 전체 대본이 어떠냐가 중요한 문제다.

-힌츠페터 기자는 2016년 1월 고인이 됐다. 그분을 생전에 뵈었나.

=실제 그에 대해서 몰랐고, 배경지식이 없었다. 그분이 생존해 계실 때 알았으면 만났을 텐데 불행히 너무 늦게 알았다. 이후 그분의 미망인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판단했다.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과도하게 그에 대해 알아보고 그대로 표현하려고 하기보다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는 책임감도 크고, 그 사람의 이미지나 삶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다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꼭 만나야 한다기보다 배우로서 다른 접근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만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연기자는 대본으로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본다. 아, 그런데 고인의 미망인에게 남편 역할로 출연해주어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다. 그 무렵 남편이 꿈에 나왔다고 하더라. 그런데 꿈속의 남편 얼굴이 내 얼굴이었다고 하더라. (웃음)

-힌츠페터 기자는 만섭(송강호)이라는 평범한 소시민이 변화하는 데 일조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대화보다는 사소한 눈빛과 표정, 동작으로 서로 소통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왜 그렇게 대사 없이 감정이 과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배우 송강호는 환상적인 배우다. 함께 연기하면서 그가 행동이나 표정 하나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이 지점이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사건에 대해 느끼는 것이 같기도 하지만, 피터와 만섭은 서로 그걸 다르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했다. 그 부분을 송강호와 나의 케미스트리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어진 대본 안에서 우리 모두 열심히 노력했다.

-연기의 기술 말고 더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웃음) 지난해 여름 촬영장의 더위가 이 영화 제작의 큰 ‘고비’였다고 들었다. 배우들에게 트레일러가 제공되는 할리우드의 촬영 여건과 한국의 환경은 사뭇 달랐을 텐데, 한국에서 촬영하는 건 어땠나.

=얼마나 더운지 모르고 한국에 왔다. (웃음)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대작은 트레일러가 있어서 에어컨이 설치되는데, 여긴 그런 편의는 없으니 배우와 스탭 모두 더위에 무척 힘들었다. 금남로 오픈 세트 촬영 때는, 한 바퀴 돌고 나면 너무 더워서 옷을 다 갈아입어야 했다. 똑같은 옷이 몇벌씩 준비되어 있었다. 사실 내 카메라에, 촬영하다 잠시 휴식할 때 송강호가 더워서 바지를 내리고 쉬고 있는 사진이 있다. 정말 재밌는 사진인데 절대 공개 못한다. (웃음) 촬영 장소를 매번 바꾸는 것도 힘들었다. 며칠마다 다른 도시에서 촬영했다. 서울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전국을 다 돌아다닌 것 같다.

-당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 속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다. 할리우드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겨울 전쟁>(1992), <U-571>(2000), <작전명 발키리>(2009) 등에서 제복을 입은 장교 전문 배우로 각인됐다.

=어떤 댓글을 보니 ‘토마스 크레치만은 장교 아니면 나치, 아니면 나치 장교만 연기한다’고 하더라. 나치 장교 역으로 유명한 건 맞지만 그런 역할만 한 건 아니다.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독일인으로 나온 영화는 13~15편이다. 하필 그 10여편이 흥행작이긴 하다. (웃음) 결국은 출신 배경 때문이 아닐까. 전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한 할리우드 대작에는 독일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다. 그중 50% 정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고 나치 독일을 다룬다. 할리우드에서 잘 알려진 독일 배우를 캐스팅하는 거다. <택시운전사>도 힌츠페터 기자가 독일인이고, 그래서 내가 캐스팅 물망에 오른게 아닌가.

-수영 선수였다가 19살 때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던 중 손가락이 부러져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고 들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나는 전에 한번도 배우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수영 선수였고 그 10년 동안 하루에 20km씩 수영을 하며 살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건축설계사가 되는게 꿈이었다. 동독에서 탈출하기 전에 내가 과연 이런 상황에서 건축설계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독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던 때였고, 생존을 위해서 20대에 결국 배우의 길을 택했다. 1990년에 베를린에 있는 극장에서 처음 연극을 했는데 그 작품이 <스탈린그라드>였다. 그때 연기의 잠재력을 알게 됐다. 한마디로 연기의 맛을 본 거다. (웃음) 그리고 이후에 러시아 버전의 <스탈린그라드>(2013)를 다시 연기했다. 독일 버전과 정확히 반대의 관점에서 스탈린그라드를 표현한 거다. 같은 제목의 영화를, 다른 나라에서 제작하고 그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한 배우는 나밖에 없을 거다. 하나의 사건을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설명한 것이다.

-시대극에서 벗어나 최근엔 <킹콩>(2005), <원티드>(2008),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시간 배우로서 많은 배역을 연기해왔다. 실존한 장교(<피아니스트>)도 연기했고, 교황(<해브 노 피어>(2005)), 연쇄살인자(<그림러브>(2006)) 역할도 했다. 역할이나 직업은 달라도 늘 동일한 방법으로 최대한 그 인물을 표현하려 노력해왔다. 최근엔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호흡을 맞춰 <정글>이란 영화를 찍었는데 미치광이 납치자로 나온다.

-독일을 떠나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며 활동했고 지금은 LA에서 생활한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원이 완성된 거다. 전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국가가 존재하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나는 독일 출신이지만 독일인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보다 나는 세계인이 되고 싶다. <택시운전사>라는 한국 작품에 참여한 것도 그런 내 마인드를 상징하는 작품이자 내 연기 생활의 성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일을 하면서 감독, 배우, 스탭들이 손을 잡고 같은 주제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작업을 경험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