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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무> Delamu

중국, 2004, 감독 티엔 주앙주앙, 오전 11시, 부산3

그곳에는 여섯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열다섯 가족이 유지되는 나름의 질서가 있고, 지나간 사랑을 애써 부인하는 젊은 라마승의 쓸쓸함이 있다. 이들이 터잡고 살아가는 곳은 사람 한 명, 혹은 노새 한마리가 겨우 지나갈만한 계곡, 언제 산사태를 만날지 모르는 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중국과 티베트의 접경지역. 이곳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잘 살고 게으른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104살 노파는 삶이 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절 감옥에 들어간 자신을 기다려준 부인을 회상하는 늙은 목사는 이제는 편하게 죽을 수 있다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촬영감독 출신 제5세대 감독 티엔주앙주앙이 구성한 인터뷰들은 얼핏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프레임 안에서 정교하게 통제된 빛과 세심하게 계산된 편집에서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진다. 인터뷰 사이사이를 잇는 것은 이 정적인 다큐멘터리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스펙터클. 지평선 위를 줄지어 걷는 보부상의 행렬과 병풍 같은 산, 그리고 고즈넉한 마을에 노을지는 풍경 등이 그것이다. 광활한 자연이 아름다울수록 그 대지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하찮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억센 하루하루가 결국은 장대한 역사를 완성한다고,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두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통해 관객들은 자연과 인간, 개인과 역사가 포개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목인 더라무는 순박한 가장의 인터뷰에서 딴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르던 노새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슬픔을 감추고 애써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남은 세 마리 노새 중 한 마리의 이름인 더라무는, 티벳어로 ‘온화한 천사’를 의미한다.

오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