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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의 제왕, 러스 메이어 사라지다

누드의 제왕 러스 메이어가 지난 9월18일, 할리우드에 있는 자신의 자택에서 82살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 12살 때부터 8mm 카메라로 영화를 찍었고, 2차대전 중에는 뉴스를 촬영했으며 <플레이보이>의 사진작가를 거쳐, 하드코어 포르노가 미국에 정착하기 전인 50년대 말부터 누드영화를 찍었던 섹스영화의 아이콘, 러스 메이어. 그는 1950년 <프렌치 핍 쇼>로 감독 데뷔를 치른 뒤 23편에 이르는 애간장 녹이는 ‘도색영화’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더 빨리, 푸시캣! 죽여라! 죽여!>(Faster, Pussycat! Kill! Kill!) <암여우> <인형의 계곡> 등 그의 영화에는 커다란 가슴을 가진 여자들이 반나체로 등장해 유약한 남성을 조롱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영화제작, 개봉 당시에는 온갖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으로 걷는 이는 언젠가 재조명되게 마련. 영화기자 케빈 토머스가 “이성애자 남성의 섹스에 관한 판타지를 위대한 예술한 취향으로 승화시켜 조망했다”고 평했던 그는, 몇 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들이 특별상영되고, 예일이나 하버드, USC와 같은 점잖은 대학 강단에서 누구보다도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히는 것으로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60년대 말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만큼이나 그의 영화 <인형의 계곡>을 지지했으며,이런 인연으로 에버트는 <인형의 계곡>의 속편 <인형의 계곡을 넘어>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