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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프 2004 가이드 [1]

제5회 서울넷&필름페스티벌(이하 세네프2004)의 오프라인영화제, 서울필름페스티벌이 오는 9월15일부터 2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와 허리우드극장,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온라인행사인 서울넷페스티벌은 이미 지난 5월부터 세네프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상태. 베스트 온라인 상영작들은 9월22일까지 홈페이지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세네프2004의 모토인 ‘집중과 확장’은 모든 미디어를 ‘집중’시키는 디지털을 활용하여, 영화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겠다는 주최쪽의 의도를 충실하게 드러내는 중심 프로그램을 포함하며, 많은 기획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새로운 영화언어를 향한 오늘날의 각종 실험의 기원을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백 투 더 오리진-1920년대 유럽영화, 레고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영상경험을 제공하는 영화: 그 현재와 미래등이 그것들이다. 장 마리 스트로브&다니엘 위예의 신작들을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는 마스터비전이나 100편에 이르는 뮤직비디오를 밤새도록 감상할 수 있는 심야상영 주크박스 미드나잇 역시 놓칠 수 없다. 영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열편의 영화들과 세네프2004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프로그램들을 소개한다.

2004 세네프 추천작 10편-그리너웨이,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레고 애니메이션

<털스 루퍼의 가방 Ⅱ>

여기, 전세계의 20세기를 담은 영화가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총 92개의 가방은 털스 루퍼라는 가공의 인물이 1928년 우라늄 개발에서 1989년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세계 각국 16개의 감옥에 감금되면서 남긴 흔적들로 그 안에는 세계의 특정한 국면이 담겨 있다. <털스 루퍼의 가방>은 피터 그리너웨이가 세계와 역사의 시청각적 지형도를 그려나가는 야심찬 3부작 프로젝트. 이 거대한 여정은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그 마지막 편이 공개되면서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1부는 지난해 칸에서 처음 상영된 이후 부산영화제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선보였고, 세네프 2004 서울필름페스티벌에서 상영될 2부는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다. 1부에서 웨일스, 유타, 안트워프에서 감금됐던 털스 루퍼는 이제 독일 임상연구소, 스트라스부르의 극장, 프랑스 해안마을 디나르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생체실험의 내막을 목격하고, 영화의 이미지와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인체 해부학과 초상화에 대한 지식을 터득한다. 이른바 세계를 재현하는 다양한 알레고리를 익혀나가는 셈. 세네프가 영화의 기원과 경계를 미래와 과거 양 극단에 걸쳐 추적하는 이 프로젝트의 허리에 해당하는 2부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끊임없이 영화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그리너웨이의 행보에 대한 전적인 동의로 보인다. 멀티이미지들과 자막, 내레이션의 미로 속에서 그리너웨이가 꿈꾸는 이미지의 새로운 역사를 짐작해보자.

<파이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 디지털 오마주.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던 21세기의 우화작가 키아로스타미는 디지털 캠코더라는 ‘미래’를 향한 눈을 통해 영화사라는 ‘과거’를 훑어내려간다. 바다와 호수의 물을 배경으로 한 <파이브>는 제목처럼 다섯개의 롱테이크로 짜여져 있다. 카메라는 오즈의 그것처럼 부동자세로 서 있지만 프레임 속의 동체들은 도도(滔滔)한 ‘일상’만으로 다양한 ‘사건’을 구성해낸다. 사람들, 오리들, 개들, 나뭇조각에 이르기까지 화면 속의 생물과 사물들은 리얼리티의 안과 밖을 노닐며 영화 내내 유일한 사운드와 배경으로 제공되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는 행동을 반복한다. <파이브>는 정지된 카메라 앞에서 흘러가는 일상과 시간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사실과 재현은 무엇을 근거로 구분되는지를 되물어온다. 특히 두 번째 테이크는 화면 분할과 인물들의 세밀한 드나듦을 매우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는 극적으로 구성되는 내러티브의 허구성이나 획일성과는 전혀 다른 일상의 ‘사건’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한번 등장한 인물이 다시 등장하거나 돌아오지 않는 인물 배치, 느닷없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시선, 카메라의 거리를 무시한 채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무너지는 관습적 미장센 등은 불균질한 ‘생활의 발견’을 만들어낸다. 키아로스타미가 ‘싸이질’을 한다면 올릴 만한 이미지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레고가 영화를 만났을 때>

아직도 레고를 코흘리개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스페셜 프로그램. 1985년부터 2004년에 이르기까지 Brickfilms.com을 통해 집결한 전세계의 레고 마니아들이 각종 레고 애니메이션들을 통해 ‘레고=장난감’이라는 편견에 일침을 가한다. <스타워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한 고전영화부터 <매트릭스> <스파이더 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뮤직비디오(에반에센스의 <브링 미 투 라이브>의 뮤직비디오인 <일어나>)와 축구중계(<베른의 기적>)까지, 5분 내외의 러닝타임으로 선보이는 19편의 다양한 패러디애니메이션들이 기다리고 있다. <레고 매트릭스>와 <스파이더 맨2>에서는 레고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선보이는 현란한 액션을,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연주곡을 배경으로 <타코 트러블>의 처참한 살육장면을 패러디한 <테이크5>에서는 딸기잼을 이용한 낭자한 선혈을 확인할 수 있다. 195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팀이 거둔 기적적인 승리를 다큐멘터리처럼 그린 <베른의 기적>(극영화 아님!)은 다양한 앵글로 보여지는 박진감 넘치는 축구경기의 묘미가 레고 영화에서도 나름의 맛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작품. 골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레고 선수들, 다양한 다시 보기를 재현한 영상편집 등은 당신이 축구 중계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

Siete Dias, Siete Noches

세명의 여자가 있다. 도살장에서는 남자들보다 힘쓸 줄 모르는 일꾼으로, 집에서는 춤바람난 딸로, 댄스교습소에서는 까만 피부에 깡마른 몸을 가진 보잘것없는 학생으로, 자신을 둘러싼 곳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여자 니에브.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선전방송에 지쳐 급기야 일을 그만두고 자살을 시도하는 TV 앵커우먼 노마. 딸의 죽음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에 짓눌린 마리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맞닥뜨린 이들 세 여인의 혼란스러운 1주일 행보를 담은 〈7일낮, 7일밤>은 그녀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엿보는 영화다. 그 시선은 계층 다양한 쿠바의 현실과 그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암울한 사회적 정서를 놓치지 않는다. 극작가 출신의 감독 호엘 카노는 다큐멘터리 형식과 극영화 형식을 혼합해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방식으로 영화의 주제를 표현한다. 카스트로 정권의 승인없이 무명배우들을 활용해 2년 동안 촬영된 이 영화는 감독이 준비하는 쿠바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두 번째 작품이 될 <아디오스>가 현재 마무리 작업 단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