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1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홀드백 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꽃은 화려한데, 뿌리가 썩고 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 영향으로 국내 극장과 제작 현장이 위축되고 있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 그로부터 2주 뒤인 2월6일, 국회에서는 ‘한국영화산업 선순환 구조 복원을 위한 홀드백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인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이 토론회는 지난해 임오경 의원,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내놓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일부개정법안을 중심에 두고, 홀드백 법제화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자리였다. 임오경 의원 개정안은 홀드백 기간을 극장 상영 종료 후 6개월 이후로 명시한 반면, 박정하 의원 개정안은 대통령령에 기간을 위임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견해차가 존재하나 규정을 위반한 자에게는 5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항목은 유사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한 노철환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 소속 김한민 감독, 김동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국장, 백대민 한국IPTV방송협회 팀장, 신한식 한국영화관산업협회 본부장, 김지희 문화체육관광부 영상방송콘텐츠산업과 과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창작자, 극장, 케이블TV, IPTV 업체를 대변하는 주체들이 모인 가운데 정작 이들을 연결 짓는 고리와 다름없는 배급사와 유통사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쇼박스, NEW, 트리플픽쳐스 등 10개 배급사로 구성된 단체인 배급사연대가 <씨네21>에 대화를 청했다. 앞선 대통령의 발언과 토론회의 내용이 미처 담지 못한 홀드백 법제화의 맹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법제화는 무딘 칼, 자율 규약이 우선해야
배급사연대는 홀드백 조정의 필요성에는 크게 공감하나 당장의 법제화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법제화라는 강력하고 무딘 칼로 재단하기에 영화 유통은 작품의 크기, 성격, 개봉 시기, 경쟁 상황, 수익 목표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영화시장과 달리 짧은 영화 유통 역사에서 우리는 한번도 홀드백 조정을 실험해보지 못했다. 업계가 자율 협약을 맺어 엿가락 늘리듯 천천히 홀드백을 조정해서 결과를 받아보고 재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현실에 맞는 홀드백을 재정립할 수 있다.” 영화 유통의 복합성을 감안할 때,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협약을 맺어 점진적으로 홀드백을 정립해나가는 길이 바람직하다는 게 배급사연대의 뜻이다.
배급사연대는 극장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홀드백을 못 박을 시 온라인 시장을 주 매출원으로 삼는 배급사들이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극장을 겸업하지 않는 배급사의 생존이 불안해지고, 주요 투자자이기도 한 부가판권유통사들의 사업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의된 법안은 극장과 온라인 시장 사이에 6개월의 판매 금지 기간을 두고, 이를 어기면 배급사에 벌금을 부과한다는 게 골자다. 즉 홀드백보다 블랙아웃 법안에 가깝다. 홀드백은 윈도 주자들을 순차적으로 출발시켜 극장 위에 윈도 레이어를 쌓는 것이고, 블랙아웃은 윈도와 윈도 사이에 판매 중지 상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블랙아웃은 영화 유통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와 같다(표1 참조). 이런 사고가 발생해 영화가 유통 중에 사망하지 않도록 윈도간 간격을 조정하는 게 홀드백 업무다.”
배급사연대 회원사는 아니나 영화 배급과 더불어 부가판권유통업에 주력하고 있는 업체 대표 A씨도 거들었다. OTT가 아닌 IPTV 유통 수익을 보고 작품에 투자해온 KT와 같은 통신사가 손실을 꺼리며 한국영화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대로 된 순서는 1번이 극장, 2번에 단건 유료 결제가 이뤄지는 IPTV, 3번이 정액 결제가 이뤄지는 OTT다. 현재 나온 법안은 2단계를 아예 없애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유통사들이 들고일어설 수 있는 얘기다.” 또 다른 부가판권유통사 관계자 B씨도 비슷한 의견을 보탰다. “넷플릭스 등 OTT와 계약해 배급작을 빨리 풀어버리는 회사들은 주로 극장을 가진 대기업 배급사들이다. 중간 규모의 회사들이 홀드백 법제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IPTV와 OTT 홀드백을 공히 6개월로 적용한다는 건 실상에 맞지 않다. 관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하지 않나.”
채찍보다 당근으로 선순환 유도해야
유통사와 배급사 관점에서는 과태료 5천만원이라는 벌금도 문제적이다. 이화배 배급사연대 대표는 2022년 7월 극장 개봉 후 한달 만에 쿠팡플레이에서 독점 공개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을 예로 들었다. “<한산: 용의 출현>처럼 극장 상영 후 OTT로 직행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법이 오히려 이런 대작에는 통하지 않는다. OTT에서 수십억원을 받을 수 있는데, 고작 벌금 5천만원 때문에 유통을 포기할까? 벌금을 겁내는 영화는 오히려 중소 규모의 영화가 될 것이다. 홀드백을 영비법에 넣는다면 지원책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극장-IPTV-OTT라는 전통적인 유통을 따르면서, 유보된 OTT 홀드백을 적용하는 영화에 혜택을 줘서 시장이 선순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게 극장과 영화를 함께 살리는 방법이고, 영화 진흥이라는 영비법의 취지에도 맞다.”
마지막으로 배급사연대는 우리나라의 홀드백 담론이 세계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다고 염려했다. “미국은 팬데믹 이후 3개월의 극장 독점을 45일로 줄였고, 독일은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였다. 프랑스는 4개월의 극장 독점 기간은 축소하지 않았지만 극장 개봉으로부터 OTT로의 유예기간은 과거 3년에서 9개월(디즈니+ 9개월, 넷플릭스 15개월, Apple TV+ 17개월)까지 단축했다.” 콘텐츠 유통 경로가 다각화되면서 극장 독점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데 반해 “OTT 때문에 장사가 안되니 극장 독점 기간을 늘리자는 것”이 배급사연대가 생각하는 현 상황이다. “스크린독과점에 따른 상영 기간 단축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깊게 겪고 있는 우리 영화시장에서 스크린 집중과 치고 빠지기식 단기 상영 행태는 그대로 두고 온라인 시장을 축소해야 영화 업계가 살아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 개탄스럽다. 참여연대와 영화인연대가 지난 2월 발표한 ‘한국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영화 관람객의 티켓 가격 인식 설문조사 보고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67.7%의 관객이 비싼 가격으로 극장 가기를 망설인다고 답해 OTT를 원인으로 지목한 비중 48.1%를 크게 앞섰다(표2 참조). 가격 정책 실패 등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외부에서만 범인을 찾는 이상 영화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이에 배급사연대는 홀드백 법제화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배급사, 제작사, 극장, IPTV, OTT 등이 참여하는 상설협의체를 구성하고자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와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IPTV 펀드 결성과 같은 새로운 홀드백 모델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국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당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1천만명을 넘어 순항 중인 것을 보더라도 극장 침체는 OTT발 문제가 아니다. 홀드백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이뤄진 2023년 이후 극장 관객 1천만명을 기록한 한국영화가 4편(<서울의 봄> <파묘> <범죄도시4> <왕과 사는 남자>) 배출되었고,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배급사 단체가 결성되었으니, 이전보다 실효성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