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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던 전쟁을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20세기 초 <보그>의 인기 모델이자 수많은 사진가들의 예술적 영감이었던 리 밀러(케이트 윈슬럿). 그는 더 이상 누군가의 피사체가 되길 거부하며 직접 카메라를 든다. 사진기자로서 리 밀러가 향한 곳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 한가운데다. 군인들은 리 밀러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등한 일원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리 밀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라이프>의 기자 데이비드(앤디 샘버그)와 함께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전쟁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리 밀러의 파란만장한 70년 인생 중 그가 종군기자로 활동한 시기에 집중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히틀러의 욕조에서 목욕하는 리 밀러 본인의 사진은 물론,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던’ 전쟁을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기록한 여러 사진이 영화의 문법으로 재현된다. 각 사진에 얽힌 에피소드 또한 리 밀러의 평전에 기초해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서사로 각색됐다. 영화의 태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전쟁은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직 리 밀러가 응시하려는 재난의 윤리를 염두에 둔 채,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둔 채 개인과 세계의 참극을 기록하고자 분투했다는 인상이다. 다만 영화는 비범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치고는 지극히 평범하다. 캐릭터의 대다수가 등장에 비해 퇴장이 묘연하다는 점은 이들의 실제 행적이 플롯의 편의에 맞춰 서술됐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케이트 윈슬럿을 비롯한 명배우들의 연기가 모든 아쉬움을 상쇄한다. 윈슬럿의 출연작 <이터널 선샤인> <블루밍 러브>의 촬영감독이었던 엘런 쿠라스의 극영화 연출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