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넷플릭스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물건을 가슴팍에 기대듯 안아보며 자신의 기분을 감지하곤 합니다. 아직도 두근거리듯이 좋아하는 마음이 들면 물건을 계속 간직하고, 좋아했지만 미련 때문에 가지고 있는 거라면 과감히 버리며 빈 공간을 만들자는 겁니다. 제가 아직도 두근거리는 물건은 아끼는 향수와 사연이 있는 운동화, 몇장의 시디 정도일 것 같습니다. 뭐랄까, 혈기 왕성하던 시절보다는 두근거리는 마음이 쉽게 들진 않아서 물건 정리와 버리기에 수월해지는 지점이 있긴 합니다.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정열이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는 겁니다. 욕구가 적어지고 포기가 빨라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저더러 식물 같아졌다고 놀렸습니다. 예전엔 욕망에 들끓더니 지금은 너무 차분하다고요. 맞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발끈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그럴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그냥 바람 빠진 사람처럼 멍청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어딘가 가지 않으면, 뭔가를 사지 않으면, 그걸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이 몸이 근질근질하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약속이 취소라도 되는 날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품에 안아봐도 설레지 않는 게 제 인생이라면, 이거 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저에게도 설레던 물건에 대해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생 같지만 2017년 즈음에 저는 유럽에서 작은 공연들을 다니며 해외 진출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두번 공연했는데, 그때마다 와준 관객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초콜릿과 손편지를 건넸습니다. 편지를 펼쳐보니 작은 영어 글씨가 빡빡하게 눌러 쓰여 있어서 종이가 울퉁불퉁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부풀어 올라 어쩐지 그걸 읽다 말고 선물이 든 꾸러미에 편지를 넣어두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나서 편안한 상태에서 내용을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길었던 일정을 마치고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그제야 전철 선반에 편지가 든 꾸러미를 두고 내렸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철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분실물 신고를 하고 여기저기 방법을 수소문했지만, 슬프게도 그 꾸러미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날 반나절을 흐느끼며 침대 속에 파묻혀 그걸 가져간 사람의 앞으로의 인생을 심하게 저주했습니다. 편지를 준 사람의 모습도 해외 공연의 경험도 흐릿해졌지만 읽지 못하고 사라진 편지에 대한 안타까움은 아직까지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 받은 편지를 제가 읽어버렸다면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요.
얼마 전에 친구와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했습니다. 화해했지만 찜찜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필 가는 방향이 같아 우리는 말없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알아차렸습니다. 저의 백팩 어깨끈에 걸어두었던 손수건이 사라졌다는 걸요.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왔기에 어디서 떨어졌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분명 피곤해하고 있을 이 친구를 두고 길을 되돌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그냥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습관적인 체념이 올라왔습니다. 이 손수건은 약 4년 전에 서울환경연합에서 후원자에게 리워드로 주었던, 쉽게 말해 운동권 판촉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네 모서리에 파스텔 색깔의 실로 수가 놓여 있는 하얀색 손수건입니다. 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 솔직하게는 대단히 예쁘다기보다는 수수한 모양새가 귀엽다, 정도로 생김새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만듦새와 사용감이 저에게는 딱 알맞아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열차 화장실에서 빨래해도 행선지에 도착하면 다 말라 있을 정도로 얇은 이것은 저의 가방 앞주머니에 항상 꽂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연말 공연 MD로 손수건을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일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손수건을 들고 다니면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종이 타월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고, 야외에서 (저를 포함한) 누군가가 실수로 뭔가를 쏟았을 때 가방에서 슥 꺼내서 멋지게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 기댈 곳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눈물이 줄줄 날 때면 세상의 모서리에 숨어서 코를 풀며 울고는 손수건을 구겼습니다. 되돌아보면 이 손수건은 제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흘리고 있는 것들을 군말 없이 받아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친구에게 전할 순 없었지만, 뜻밖에도 그 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같이 손수건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는데도 신기하게 기운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길바닥에 손수건처럼 보이는 것들에 설레어 다가갔다가 실망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몇번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보도블록 위는 유난히 깨끗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다퉜던 감정은 잊고 원래 왔던 길의 반 이상을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축 늘어진 동물처럼 도로변에 떨어진 하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저는 뛰어가 손수건을 잡고 품으로 가져가 꽉 껴안았습니다. 오랫동안 평범하게 제 옆에 있어준 그것들엔 저는 맡을 수 없는, 저의 냄새 같은 것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