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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코미디와 휴머니티의 균형감각, <좀비딸> 필감성 감독

데뷔작 영화 <인질>에 이어 티빙 시리즈 <운수 오진 날>을 연출하며 긴박한 스릴러의 세계에 발 담근 줄 알았던 필감성 감독이 가족 코미디 <좀비딸>로 여름 극장가를 노크한다. 원작은 동명의 웹툰.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좀비가 된 딸 수아(최유리)를 데리고 엄마 밤순(이정은)이 사는 고향으로 대피하는 정환(조정석)이다. 엉뚱한 상상처럼 시작해 뭉클한 여운을 남기기까지, 영화는 성실하게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극 중 수아와 같은 또래인 필감성 감독의 딸도 한동안 울먹였다고 한다. “아빠 마음을 알겠다는 감상을 들려주기에 효심이 커진 줄 알았으나 다음날 다시 사춘기 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전작보다 한결 밝은 이야기를 딸에게 선보일 수 있어 새로웠다는 필감성 감독은 이제 집 밖 객석의 미소를 기다리고 있다.

- <인질>의 황정민, <운수 오진 날>의 이성민, <좀비딸>의 조정석 배우가 연기한 주인공들은 모두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는다. 비상사태에 고군분투하는 인물에 연출자로서 끌리는 편인가.

생각지 못한 공통점이다. 장르를 떠나 인물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질문하는 이야기에 끌려온 것 같다. <좀비딸>도 코미디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연출을 결심했다기보다는 ‘과연 좀비와 가족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에 매료돼 골랐다. 슬픈 설정을 유쾌한 톤으로 그리는 원작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하는 영화인 <미스 리틀 선샤인> <가위손> 같은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 그래서인지 배우들이 취하는 작은 제스처나 지나가듯 뱉는 대사에도 잔잔한 위트가 배어 있다.

시나리오에 마련된 웃음의 기반 위에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더하곤 했다. 다만 너무 적극적으로 웃기려 들면 이 영화가 추구하는 코미디의 톤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고, 배우들도 동의해 소소한 웃음이 더 살아날 수 있었다.

- 특히 밤순이 손가락 하트 만들기에 실패할 때, 보아의 디스코그래피를 정확히 언급할 때 빵 터지는 관객이 많았다. 정환의 어머니이자 수아의 할머니인 밤순을 맡기에는 이정은 배우가 너무 젊다는 우려는 없었나.

나이나 외양을 먼저 고려하지 않았다. 손녀가 좀비가 되어 슬픈 와중에도 극단적인 상황을 코믹한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는 분으로 이정은 배우가 떠올랐다. <운수 오진 날>을 함께했기에 서로 신뢰도 있었다. 정교한 특수분장으로 노인의 얼굴을 구현해보기도 했지만, 배우의 표정에서 비롯되는 매력이 잘 보였으면 해서 주름 정도만 남겼다. 그럼에도 원작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테스트 사진을 보고 이정은 배우에게 말했다. “선배님, 진정한 만찢녀십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어르신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도 굉장히 많이 봤다. 젊고 힙하게 사는 분들이 많아 좀더 자신감 있게 우리의 선택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 <곡성> <부산행> 등에 참여한 전영 안무가가 좀비 움직임을 전담했다.

우리 영화의 좀비는 무섭다가도 어느 순간 좀 웃겨 보여야 했다. 그래서 좀비들에게 사실적인 서사를 부여했다. 정환이 처음 목격하는 앞집 여자 좀비는 탱고 강습을 받다가 와서 몸에 춤이 남아 있고, 틀니가 빠지는 할머니 좀비는 아침에 수영을 다니는 분이라 배영 자세로 등장하는 식이다. 택배 기사 좀비도 테이프 뜯어내는 동작을 한다. 이런 광경을 위에서 조감했을 때 군무처럼 보였으면 해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참고했다.

- 수아는 고양이 같은 좀비다. 곁을 내주지 않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다가도 가족을 기억하는 눈짓을 한다.

고양이 집사로서 고양이가 내는 소리가 ‘배고파’, ‘졸려’처럼 사람 말같이 들릴 때가 있다. 최유리 배우에게도 수아가 좀비일 때 가족의 반려동물 같았으면 좋겠다고, 수아의 요구나 심정을 담아서 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마침 최유리 배우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 현장에서는 애용이 역의 고양이 금동이가 당초 계획된 CG 일부를 대체할 만큼 대단했다던데.

금동이와의 촬영 원칙은 ‘될 때까지 기다려주되 짧게, 빨리 찍고 보내준다’였다. 애용이가 소파에 앉아 TV 보는 장면도 안되면 CG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금동이가 천연덕스럽게 그 자세와 시선을 해내서 마법 같았다. 금동이로 인해 콘티를 바꾼 경우도 있다. 정환이 수아에게 자기를 물라고 말하며 팔을 내밀 때 애용이가 조마조마해하며 쳐다보는 장면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그 촬영을 할 때 금동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자리에 데려다놓을 때마다 물러서더라. 생각해보니 그 상황에서는 그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금동이가 물러나는 모습을 찍었다.

- 이렇게 개성 넘치는 가족들 사이에서 정환이 중심을 잡고 있다. 조정석 배우가 가족 드라마로서 감정의 진폭이 큰 이야기의 균형을 잘 지켜줬다.

한신 안에서도 웃겼다가 울렸다가를 반복할 때가 많은 이 영화에서 조정석 배우는 특유의 리듬감으로 감정의 이음새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냈다. 본능적이면서도 절묘한 코미디 감각 덕분이다. 극 초반 좀비가 집에 쳐들어오는 장면에서도 기존 대사 이외의 리액션을 더해 장면을 풍부하게 채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이건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그렇게 완성된 장면이 너무 많다.

- 신파적으로 비칠 법한 대목은 최대한 간결하게 묘사하려고 애쓴 인상이다. 전개상 꼭 필요하지만 표현이 과해질 수 있는 대목은 어떻게 매만지려 했나.

극단적으로 슬픈 상황에서도 이 영화 고유의 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위트 한 스푼씩은 꼭 넣고 싶었달까. 결말부에 등장하는 빨간 약처럼 말이다. 심각한 장면에서도 감정이 너무 한 방향으로 흐르면 안된다는 걸 계속 되새기며 배우들과 소통했다.

- 극 중반까지 정환의 최대 적이던 연화(조여정)의 회심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 건지.

그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있었지만 영화의 방향성을 고려해 삭제했다. 연화는 정환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정환과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관객이 연화라는 캐릭터를 하나의 질문처럼 여기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해봤으면 하는 의도를 전하는 데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