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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경의 TVIEW] 트리거

한국 사람들이 총기를 가지게 된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트리거>는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도를 펼쳐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대답을 찾아가는 드라마다. 어느 날 출처 불명의 총기가 배송되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총기를 사용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총기 확산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순경 이도(김남길)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총기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의 곁을 맴도는 문백(김영광)은 총기는 세상을 평등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불법 총기를 유통하는 조직의 일원이다. 드라마는 “갈등과 대립이 만연한 정서적 전쟁 상태”인 한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특히 고시원, 학교, 경찰서 등 총기 사고가 일어난 주요 장소는 학교폭력, 직장내 괴롭힘, 전세 사기, 산업재해 등 다양한 사 회문제를 드러낸다. 드라마는 문제를 드러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억울한 사연들이 스펙터클한 화면과 자극적 전개를 위한 연료로만 쓰인 탓에 후반부로 갈수록 길을 잃는다. 자신을 학대하다가 버린 조국을 향한 복수심을 총기 사용에 관한 그릇된 신념으로 포장한 문백과 총기를 난사한 남성들의 ‘자신을 피해자라 여기는 가해자의 서사’만 반복한 다. 결국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아픈 현실을 진단했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무슨 철학이 있는 것처럼 네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 마.” 문백을 향한 이도의 말처럼, 드라마 역시 “무슨 철학이 있는 것처럼” 시작했다가 진짜 철학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끝나버린 것이다.

check point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책 제목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도처에 넘치는 사회를 나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의 ‘억울 함’과 산업재해로 아들을 잃고 기업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어머니의 ‘억울함’이 총기를 들 수밖에 없는 사연으로 병렬 배치될 일인지 불편한 의문이 남는다.

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