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붐빈다. 워낙 오랜만이라 쓰면서도 낯설다. 문화가 있는 날인 지난 7월30일, 전국에서 극장을 찾은 관객수가 86만명으로 집계됐다. 팬데믹 이후 하루 최다 관객수를 경신한 이 숫자는 지난해 같은 날과 비교해도 25%, 지난 6월과 비교하면 무려 60%가 증가한 수치다. 30일 개봉 첫날 43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한 <좀비딸>이 최고의 수혜를 입은 영화로 떠오른 가운데, 예술영화 시장에도 활력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16일 개봉한 알랭 기로디 감독의 신작 <미세리코르디아>는 1만명을 이미 넘겼고, 32년 만에 디지털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돌아온 소마이 신지의 <이사>(1993)는 1만6천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꼭 할인쿠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극장가에 훈풍이 부는 건 분명하다.
오랜만에 북적이는 극장가를 둘러싸고 벌써 여러 말이 오간다. 비단 할인쿠폰의 효과뿐 아니라 폭염, 여름 신작 개봉 등 외부 요인이 한몫했다는 익숙한 분석 뒤로, 이렇게 빠른 효능감을 보니 불황은 결국 영화표값 문제였다는 뼈아픈 지적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활력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건 할인쿠폰 사업에 투입되는 재원이 국비 지원 없이 모두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에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티켓값의 3%를 모아 마련하는 영화발전기금은 호황기엔 1천억원 넘게 쌓이기도 했지만 코로나 이후 급격히 감소한 상황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처럼 다시 얼어붙었을 땐 훨씬 혹독한 반동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북적이는 극장을 마주하는 건 기쁜 일이다. 기쁘면서도 마음이 복잡하다. 이 혼란스러움 속에 최근 본 두편의 영화 <미세리코르디아>와 <이사>를 떠올린다. 무릇 좋은 영화에는 설명하기 힘든 신비가 깃들어 있다. <미세리코르디아>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 개연성의 저주를 걷어내고 나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이 영화는 정지된 세계에 활력을 기다리는 영화다. 그 욕망이 설사 수많은 우려와 걱정을 낳더라도, 천천히 쇠락해가기보다는 기꺼이 금기 너머 에너지를 환영하겠다는 태도가 기껍다. 활력의 욕망 아래 자비의 손을 평등하게 내미는 <미세리코르디아> 위로 7월 마지막 주의 한국 극장가가 겹쳐 보인다면 호들갑일까.
이와 동시에 정반대의 우울감도 든다. 한 챕터의 종막, 한 시절의 끝을 기어이 목격하게 하는 <이사>는 남 일 같지 않다. 양 볼을 잡아당겨지고 있는 포스터 속 소녀 렌(다바타 도모코)의 표정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도, 아니 보고 났더니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더 헷갈린다. 불과 정화, 통과의례와 성장이라고 정리하면 간명하겠지만, 나는 항상 아이가 어딘가로 달리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렬한 죽음을 느낀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장례식. 냉혹한 현실을 끝없이 미루고 싶었고, 자잘한 기억과 행복을 수없이 꼽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 그 시절과 작별한다는 건 성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의 종말이나 진배없다. 성장통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않은 그 생생한 고통을 끝까지 목격한 뒤에야 들려오는 소리. “축하합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렇게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소박한 다짐을 한다면, 덜 아프기보다는 더 아파도 더 기억하며 살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