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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간결하고 정확한 스윙으로 쌓아올린 웃음 타율, <좀비딸>

놀이공원에서 호랑이 사육사로 일하는 정환(조정석)은 중학생 딸 수아(최유리)의 생일을 맞아 조촐한 잔칫상을 준비한다. 정환이 일터에서 구해온 추로스가 식탁에 오른 것을 두고 부녀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앞집 부부가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정환과 수아는 곧이어 이 광경이 좀비가 인간을 물어뜯는 장면임을 알아차린다. 남자의 목덜미를 물었던 여자가 정환의 집 창문까지 부수자 정환은 어머니 밤순(이정은)이 사는 바닷가 마을 은봉리로 대피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주택가는 이미 좀비 떼가 창궐한 상태. 정환이 반려묘 애용이를 들쳐 업고 자동차를 향해 뛰는 동안 수아가 어린이 좀비에게 팔을 물리고 만다. 감염된 딸을 홀로 둘 수 없었던 정환은 좀비로 다시 태어난 수아를 조수석에 묶고 정신없이 은봉리로 달려간다. 손녀의 변화를 확인한 밤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설상가상 정부가 감염자를 사살하는 행보를 보이자 정환은 수아의 정체를 세상에 들켜서는 안된다고 확신한다. 다행히 수아는 여타 좀비들과는 다르게 과거 기억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육사로서 쌓은 지식을 활용하면 수아를 훈련시킬 수 있다고 여긴 정환은 고향 친구 동배(윤경호)의 도움을 받아 수아를 차근차근 가르친다. 그렇게 수아를 꽁꽁 숨겨 길들이던 정환 앞에 암초가 나타난다. 정환의 첫사랑 연화(조여정)가 모종의 이유로 ‘좀비 헌터’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연속되는 위기에 정환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

영화 <좀비딸>은 이윤창 작가의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웹툰 <운수 오진 날>을 동명의 시리즈로 만든 바 있는 필감성 감독이 데뷔작 <인질>에 이어 두 번째로 완성한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좀비딸>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원작과 거의 동일하다. 소소한 웃음 끝에 눈물을 자아내는 흐름도 그대로다. 인물의 직업이나 장기 등 세부적인 디테일 정도만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상의 변화가 허투루 소모되지 않고 극 중에서 의미 있는 삽화들로 연결된다는 것이 이 각색의 미덕이다. 연출과 편집도 담백하다. 자칫 신파적으로 비칠 수 있는 결말마저도 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야기의 리듬을 살렸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큰 장점이다.

지난해 여름 <파일럿>으로 관객을 만난 배우 조정석은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심각한 상황마저 유머러스하게 돌파한다. 필감성 감독의 전작 <운수 오진 날>에서 살인자를 쫓는 처절함을 토해냈던 배우 이정은은 파격적인 분장을 감행해 만화적 재미를 더한다. 신예 최유리는 좀비로 분한 탓에 극도로 제한된 표현 범위 아래서도 인간성을 간직한 좀비의 면모를 드러냈다. 영화 <곡성> <부산행>,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등에 참여한 전영 안무가가 캐릭터에 걸맞은 좀비의 움직임을 함께 고민한 덕분이다. 윤경호, 조여정 배우가 신나게 선보이는 코미디 연기도 반갑다. 방해자와 조력자 역할을 넘나드는 두 배우는 자유자재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가 이완시킨다. 때로 특정 에피소드가 늘어지면서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는 것처럼 보이거나 인물들의 회심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영화가 의도한 대로 가볍게 웃고 울다 보면 만족할 수 있는, 여러모로 시원시원한 여름 영화.

close-up

수아네 가족의 반려묘 애용이는 단연 <좀비딸>의 마스코트이자 신스틸러다. 웹툰 속 애용이와 꼭 닮은 고양이를 찾아 헤맨 제작진은 최종적으로 네 마리의 치즈 태비를 오디션에 참가시켰다고 한다. 배역을 따낸 고양이는 오디션장을 제 집처럼 누비는 대범함과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배를 까는 여유를 두루 갖춘 금동이. 간식 츄르 한입이면 집중력을 발휘하는 금동이 덕분에 애초에 CG로 계획한 장면 상당수를 실제로 촬영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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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감독 조너선 레빈, 2013

<웜 바디스>와 <좀비딸>은 원작이 있는 좀비영화라는 공통점 외에도 여러 장르적 유사성을 공유한다. 좀비가 두려운 존재이기보다 귀여운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그 바탕에는 좀비를 향한 애정 어린 연민이 자리한다. 한때 인간이었으나 더는 인간이 아닌 캐릭터도 인간적인 매력을 자랑하며 사랑받을 수 있을까. 두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경쾌한 답안을 들려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