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hzzzzs3e님이 쓴 유튜브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간신히 겨우겨우 잘생겨진 그 위태로움.’ 개그우먼 엄지윤씨가 최근에 새롭게 내놓은 부케인 ‘엄지훈남’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엄지훈남’은 엄지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훈남 요리사가 주인공인 가상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개그우먼이 연기하는 남자 캐릭터라고 하면 우스꽝스러운 남자 모습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엄지훈은 진짜 ‘훈남’이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영상에서 본 그대로를 묘사하자면 이렇다. 이마는 가리고 전체적으로 풍성해 보이는 올 블랙 커트 머리. 넓은 어깨가 돋보이는 블랙 셔츠, 셔츠를 걷어올린 손목에 자리 잡은 큰 사이즈의 시계, 웃을 때마다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큰 손, 무엇보다 188센티미터의 키. 꽤 큰 키를 빼고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몇몇 남자 연예인이 바로 떠오르는 흔한 스타일이다. 엄지윤이라는 여성의 남자 흉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훈남이라 다들 당황스러워하는 가운데 저 댓글을 읽고 깨달아버렸다. 훈남의 진짜 의미를. 만약 엄지훈의 앞머리가 없었다면? 만약 블랙 셔츠가 아닌 등산용 고기능 셔츠를 입었다면? 만약 시계를 착용하지 않은 맨 손목이었다면? 그야말로 이 모든 것들의 조합으로 ‘겨우겨우’ 만들어진 훈남이란 위태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도 엄지훈의 얼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잘생겼다’라고 감탄하면서도 엄지훈의 눈매가 어떤지, 눈 밑 살은 어떤지, 코끝은 어떤지, 광대는 어떤지, 입술은 어떤지, 턱이 어떤지, 얼굴의 입체감이 어떤지, 피부는 어떤지 말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조차! 아직 두편밖에 올라오지 않은 ‘엄지훈남’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엄지윤씨, 다음 영상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퇴출되어야 할 이준석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며 젊은 남성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기성 언론을 보며 ‘이대남’이 취직과 결혼을 하기도 힘든데 병역이나 사법 영역에서 차별까지 받으니 이해하고 보듬자는 중년 남성들의 글을 읽으며 꽉 막혔던 기가 풀리는 느낌이다. 엄지‘훈남’의 위태로움을 간파한 많은 댓글들을 보며 한국 사회에서 ‘간신히’ 그리고 ‘겨우겨우’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존재가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구나 싶어 연대감마저 들었다. 덕분에 요즘 최고의 화제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이번에 시즌3을 절찬리에 방영 중인 <뿅뿅 지구오락실>을 내가 보고 또 보는 이유도 깨달았다. 입을 크게 벌린 채 김밥을 통째로 우겨넣거나 눈알이 튀어나오고 콧구멍이 훤히 보이는 표정을 지어도, 편안한 옷차림으로 요란스럽게 웃고 떠들고 뛰어다녀도 전혀 위태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여자들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 말이다. 일말의 위태로움(루미의 몸에 새겨진 문양)조차 극복한 ‘헌트릭스’가 영화 속 세계뿐만 아니라 현실의 빌보드에서도 ‘사자보이즈’를 이겼다는 소식에 더욱 마음이 놓인다.
[임소연의 클로징] ‘엄지훈남’에는 있고 ‘케데헌’에는 없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