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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이 아닌 것으로, <366일> 배우 아카소 에이지

2003년 여름, 오키나와는 눈부시게 푸르르지만 고3 미나토(아카소 에이지)는 짙은 어둠 속에 있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에게서 모든 동력을 앗아간 참이다. 이어폰을 꽂은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어느 날, 햇살 같은 한 학년 후배 미우(가미시라이시 모카)가 그를 찾아온다.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시작된 관계는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서서히 깊어지고, 미나토는 미우의 밝은 에너지를 통해 터널 밖으로 걸어 나온다. 도쿄에서 함께 20대를 시작하면서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꿈에 다가가기 위해 애쓰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커다란 시련을 맞닥뜨린다. <366일>은 긴 시간을 들여 엇갈리는 마음과 교차점의 순간을 따라가는 영화다. 배우 아카소 에이지가 깊은 눈빛과 숨결로 간절한 멜로드라마를 완성한다.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로 한일 양국에서 팬덤을 쌓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로 자리 잡은 그가<366일>의 국내 개봉(6월11일)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레퍼런스 사진을 보자마자 정확히 포즈를 취하고 재치와 진지함을 오가는 답변을 쏟아낸 그는 미나토만큼이나 친절했고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 <366일>을 찍으며 대사 이외의 방식으로도 감정을 전하는 법을 배웠다는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 영화를 보며 오키나와에서 펼쳐지는 <라라랜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어땠나.

나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라라랜드>를 떠올랐다. 두 남녀주인공의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여운 있는 결말이 인상 깊었다. 미나토의 첫인상은 쿨했지만 오랫동안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사랑을 주는 법을 알게 된 인물이다. 또 상실을 겪으며 누구보다 절실히 사랑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 21년에 걸쳐 두 남녀의 인생을 따라가는 이야기인 만큼 전체적인 흐름과 감정선을 염두에 두고 연기할 수밖에 없었겠다.

도쿄에서 먼저 촬영하고 오키나와로 넘어가는 식의 역순 촬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 장면이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미나토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신조 다케히코 감독님과 촘촘히 의논하며 작업했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반부는 미우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미우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억눌러가며 연기했다. 후반의 변곡점을 지나고 나서부터 묶어두었던 감정을 서서히 흘려보냈다.

- 미나토는 감정을 삭이는 편이고 어떤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대사도 적은 편이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어떻게 풀어나갔나.

그동안 맡았던 어떤 캐릭터보다 대사가 적어서 오히려 신선했다. 준비를 시작할 때 말수가 적다는 점을 중요한 키로 삼았다. 그렇다면 미나토는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낼까, 그걸 찾아가는 게 과제였다. 표정부터 특유의 분위기, 어떤 속도로 움직이고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반응하는지 등 ‘미나토스러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 미나토가 미우에게 처음 호감을 느낀 순간은 언제라고 보았나.

그 지점이 대본에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아서 참 어려웠다. 그래도 미우가 바뀐 CD를 돌려주러 왔을 때 오키나와 전통 도넛인 사타안다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미나토가 처음 호감을 느꼈다고 봤다. 처음 보는 이 여자애가 누구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자신과 달리 간식 하나에도 행복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끌렸을 것 같다. 나중에 학교 옥상에서 단둘이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미나토는 미우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그 감정이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도쿄에서 둘은 결국 헤어진다. 저녁의 도심 한복판에서 미나토가 미우에게 돌연 “이제 너와 함께 있을 수 없다”라며 이별을 부탁하기 때문이다. 이때 미나토는 어떤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나.

우선 이 신은 지난해 6월에 촬영했는데 재밌는 일화가 있다. 가미시라이시 모카 배우가 내게 감정적으로 힘든 신인데 피부가 너무 윤이 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사실 이날 낮에 사우나에 갔다왔는데 본의 아니게 효과가 나는 바람에…. (웃음) 아픈 말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동안 미나토는 미우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심정이었을 거다. 미우를 좋아하는 마음을 애써 눌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촬영했고. 머리를 깊이 숙인 건 미우가 다른 대답을 못하게 하려는 미나토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간곡히 헤어져 달라고 하는 상대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 <366일>은 서로를 너무 배려한 나머지 결국 어긋나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나토와 미우,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만약 미나토가 곁에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커뮤니케이션을 해라! (웃음) 좀더 솔직하게 말로 표현하라고. 그리고 모든 걸 혼자서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도. 내가 원래 그런 주의다. 내 감정이나 의견은 직접 표현해야 진심이 잘 전해지고, 함께해나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일이 더 원활하게 풀린다고 생각한다.

- 학창 시절의 아카소 에이지는 어두운 면을 지닌 미나토와 밝고 활기찬 미우,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웠나.

고민할 필요 없이 미우다. 반 친구들 모두와 친했는데 아마도 취미 부자였던 게 비결이지 않았나 싶다. 이 친구와는 서로 좋아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저 친구와는 어제 본 스포츠나 예능 방송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반에서 조금 무서운 친구부터 조용한 아이까지 다 친해질 수 있었다. 취미는 요즘도 많다. 바이크 면허를 취득하려고 준비 중이고 최근에 골프도 시작했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몸을 쓰는 활동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66일>은 감정적 여운이 워낙 깊은 작품이라 촬영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미나토를 놓아주기 힘들었는데, 주 4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조금씩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 미나토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당신도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쳤을 텐데 그 여정은 험난했나, 아니면 비교적 행운의 신이 함께했나.

전체적으로 보면 쉽지 않았으나 돌이켜보면 부분부분 운이 따랐던 것 같다. 사실 10대 시절에 ‘나는 꼭 배우가 될 거야’라고 다짐한 건 아니었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배우가 됐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잘 흘러온 셈이다. 작품이 공개된 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재밌었다는 감사한 반응을 들을 때마다 참 뿌듯하고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영화 취향도 궁금하다. 멜로영화를 즐겨 보기에 멜로 작품을 택한 걸까.

나는 ‘새드 엔딩파’다. 새드 엔딩을 곱씹다 보면 ‘그래. 마냥 슬프기만 한 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순간을 좋아한다. 단순히 보면 주인공이 보상받지 못하거나 잘 안되는 상황이 비극적일 수 있는데 그런 순간에도 발견되는 희망이나 얻어가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라라랜드> <시네마 천국> <인생을 아름다워>를 좋아하는 거고.

- <366일>을 본 뒤 아카소 에이지의 다음 작품을 궁금해할 관객을 위해 차기작 정보를 살짝 들려준다면.

8월8일 일본에서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라는 공포영화가 개봉한다. 평소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데 직접 출연까지 하게 돼 즐겁게 촬영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새 작품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상반기는 비교적 여유롭게 보낸 편이라 하반기에는 다시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