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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혼모노>
성해나 지음 창비 펴냄

이가 빠지는 꿈을 꾸었다. 멀쩡하던 이가 하나둘 빠지다 우수수 떨어지는 꿈. (<혼모노>) 삼십 평생 온 정성을 다해 모시던 신이 갑자기 어린 신애기에게 옮겨갔다. 하필 내 신당 앞으로 이사 온 신애기에게 옮겨간 나의 장수할멈신. 칼춤을 추다 신령님이 오지 않아 피를 보고 만 무당은 자신이 번아웃에 걸렸다고도 의심해보지만 실은 모시던 신이 죄다 떠났을 뿐이다. 이가 우수수 빠지는 꿈을 꾸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큰 굿을 의뢰받고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까지 한다. 성해나 소설집의 표제작 <혼모노>는 한장씩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까울 만큼 이야기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혼모노>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니 갑자기 떠나버린 나의 재능, 그리고 그 빛나는 재능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신애기에 대한 집착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주인공의 터무니없는 시도와 자기혐오가 마치 글이 너무 안 써질 때 내가 하는 말들 같다. 그래서 추천사에서 박정민 배우 역시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극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단편들은 어떠한가.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남영동 대공분실과도 같은 가상의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공한 건축가 여재화는 이 건축물 설계를 맡게 되지만 다른 업무가 많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구보승에게 고문실 설계를 떠넘긴다. 자신이 총괄 책임을 맡아 중간중간 구보승의 보고를 받으며 이 공간의 목적에 철저히 복무한 끔찍한 공간을 완성시켜가는 제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광기를 발견하기까지 한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스승의 가르침에 의거해 인간의 심리를 가장 처절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공간을 완벽하게 설계해 나가는 구보승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공포에 질리게 한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외국계 한국인 듀이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태극기 집회에 휘말려 이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착각하고 도움을 받는 소설 <스무드> 역시 주인공의 심리에 의거하되 거침없이 오해받는 축제 속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막힘 없이 대담하게 휘몰아친다. 성해나의 소설집을 꺼내 들면 엉덩이에서 뿌리가 나 붙박이가 되어 움직일 수 없다. 그 소설을 다 읽기까지는.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