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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는 오늘도> 배우 문소리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소리(문소리)는 한때 트로피를 독차지하다시피해 연기파 배우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중견 여배우’다. 그럼에도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등산복 대신 패딩 점퍼를 입고 산에 오른다. 하산할 때 아는 제작자(원동연) 때문에 싫은 내색 없이 모르는 남자들과 술자리에 합석해야 하고,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조차 사인을 몇장씩 해줘야 하며, “치과 의사와 사진 한장 찍으면 임플란트 수술비를 50% 할인받을 수 있다”는 엄마의 간청을 이기지 못해 미용실에 들러 메이크업을 한 뒤 치과로 향하기도 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육아는 친정 엄마의 몫이다.

배우 문소리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단편 세편을 합쳐 총 3막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1막은 소리가 등산하러 갔다가 하산하면서 초면인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이야기다. 예의가 없는 한국 남자 때문에 속상해하는 소리에게 친구는 “메릴 스트립처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찍어라”라고 달래지만, 위로가 될 리 없다.

2막은 가정일도 육아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워킹맘’의 고단함을 보여주는데 지인인 감독에게서 받은 ‘특별 출연’ 제안이 당연히 위로가 될 리 없다. 3막에서는 과거 함께 작업했던 이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때아닌 예술 논쟁이 벌어지는데 결국 더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니 씁쓸해진다.

배역 이름을 자신의 이름 그대로 쓰고, 직접 쓴 시나리오여서일까. 문소리의 자의식과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로 보이는 까닭에 영화는 매우 생생하다. 감독이나 제작자 앞에서는 콧소리를 내고, 딸 앞에서는 정색하는 연기 또한 유머러스하다.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극중 소리의 남편으로 출연해 아내에게 미안해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난감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소리의 민낯은 한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단한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