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풀도 나무도 없이 오직 채탄시설과 광부 숙소만으로 뒤덮인” 하시마섬 혹은 군함도.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에게 군함도는 ‘지옥섬’으로 통한다. 가혹한 노동이 시작되는 갱도의 출입구는 ‘지옥문’, 목숨을 붙잡고 오르내리는 갱 내부 계단은 ‘목숨계단’이다. “한 발짝 바로 옆이 죽음”인 징용공의 삶을 견디다 못해 세명의 조선인은 탈출을 시도한다. 그 결과, 하나는 살아서, 하나는 죽어서 섬에 돌아오고, 나머지 하나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살아온 자도 모진 고문으로 몸을 건사하지 못한다.
소설 <군함도>는 섬 탈출을 시도한 조선인 징용공들의 처참한 실패로 시작한다. 동료의 예상된 실패를 마주하는 명국의 한 서린 분노와 이를 압도하는 무력감이 징용공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소설 전반에 낮게 깔린다. 1권에서는 “사람이기 위해서 싸우며 살”겠다는 의지로 새롭게 탈출을 시도하는 세 징용공의 이야기를 담는다. 징용공 저마다의 사연과 참혹한 징용 생활, 탈출을 계획하고 시도하는 과정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언어에 담긴다. 2권에선 탈출한 징용공들이 나가사키에서 투쟁과 교육을 통해 과도기적인 삶을 꾸리는 모습을 그린다. 나가사키 피폭 후 조선인을 향한 차별과 멸시는 더 강해지는 가운데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결말로 길고도 서러웠던 타국 생활을 맺는다.
막다른 삶에서도 동료애, 사랑, 의리는 살아 있다. 팔도 각지에서 끌려온 징용공들의 배경에 맞게 여러 지방의 사투리가 녹아들어 읽는 맛을 더한다. 서로의 서글픈 신세를 나누다 사랑에 이르는 남녀, 바다 너머의 배우자 생각에 잠 못 드는 부부 등 사실적 서사만큼이나 섬세한 서정에도 공들인다. “죽음을 끼고 사는” 열악한 생활 속에서도 조선인 징용공들의 굴하지 않는 기개를 표현하는 부분은 눈이 번쩍 뜨이게 한다. 갱목이 무너지는 사고로 동료가 목숨을 잃자 징용공들은 “독이 오른 눈빛”을 번들거리며 소리를 한데 모아 조선말로 혼을 불러내는 의식을 치르고 조선인을 깔보는 말엔 사후를 재지 않고 울분을 토한다. 27년에 달하는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로 완성한 작가 한수산의 역작이다.
조선인 징용자와 피폭자의 한을 더듬다
건너편 섬 화장장에서 그녀를 태우는 연기가 솟아오를 때는 방파제 위에 퍼질러 앉아서 됫병 술을 옆에 놓고 길자야 길자야 부르면서 울었다. 차라리 물에 빠져서 고기밥이나 되어 죽지. 고기밥이라도 되면 누가 아니. 바닷속 그 고기에게 무슨 내 땅 남의 땅이 있겠냐. 그 고기가 네 고향, 그 다도해 푸른 물 건너 부둣가에라도 가서 너울너울할지 누가 아니. 그러면 네 혼백이라도 고향에 가는 게 아니겠니.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울었다. 왜놈 손에 불살라지는 길자야. 한줌 뼈로 항아리에 들어가는 길자야, 하면서 또 금화는 울었다.(1권 350쪽)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어가야 했던 징용공들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속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거기 있었다는 우연과 미쯔비시의 수많은 군수공장이 포진한 나가사끼에 끌려온 징용공이란 필연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나가사끼 조선인 피폭자의 죽음은 그토록 허무하고 무구하다.(2권 4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