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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조] 그에게 블록버스터란

미스터리다. 강제규 감독이 오다기리 조를 선택한 이유 말이다. 우리가 아는 오다기리 조는 대규모 상업영화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독립영화 계열의 작가들에게 아름다운 육체와 곡예 같은 연기를 제공하는 남자다. 강제규는 “장동건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그보다 더한 미스터리가 있다. 오다기리 조가 <마이웨이>를 선택한 이유 말이다. 우리가 알던 오다기리라면 당연히 이 역할은 거절했어야 옳다.

사실 오다기리는 강제규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는 대본을 읽자마자 “내 타입의 영화가 아니니 찍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도 대작을 거의 안 했다. 대작은 돈이 든다. 대히트를 쳐야만 환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모두 끌어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추구하는 바도, 예술성도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영화. 그건 TV다. 영화가 아니다.” 오다기리 조는 시나리오에서 무려 10군데가 넘는 부분을 까탈스럽게 고쳐달라고 주문했다. 그건 오다기리 조 특유의 정중한 거절법이었다. 강제규도 만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오다기리가 요구한 부분을 모조리 고친 시나리오를 한달 뒤에 보냈다. “이런 분이라면 아무리 상업적인 영화라도 내 의견을 존중해가면서 찍겠구나 싶었다. 그런 신뢰가 <마이웨이>를 선택하게 했다.” 물론 거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한국에서의 제의라는 점에서도 끌렸다. 한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다. 촬영하는 9개월간 머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웃음)”

오다기리 조가 맡은 역할은 김준식(장동건)과 경쟁하는 마라토너이자, 그를 철저하게 짓밟는 일본군 장교이자, 결국 역사의 구렁텅이에서 운명적인 우정을 나누는 남자, 타츠오다. 그런데 <마이웨이>는 그를 단순히 김준식 옆에 서 있는 조연으로 떨어뜨리는 일이 없다. 아니, 오히려 타츠오는 <마이웨이>의 실질적인 화자에 가깝다. 그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맺는 동시에 영화에서 가장 거대한 신념의 변화를 겪는 캐릭터다. 오다기리 조는 “한국 관객은 영화를 볼 때 김준식에게 이입할 것”이라며 겸손하게 물러난다. “결국 타츠오는 김준식을 등에 업고 가는 캐릭터다. 오히려 타츠오의 감정 변화에 일본 관객이 충분히 동의를 하고 따라갈지는 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묘한 부분들을 다루는) 그런 작업은 감독님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감독님은 한국인의 시각으로 본 일본 병사를 그릴 수밖에 없다. 나는 배우이기 때문에 그 일본 병사를 어떻게 하면 좀더 잔혹하고 냉정하게 보이도록 연기할지에만 신경을 썼다.”

오다기리 조는 <마이웨이>가 배우로서의 길을 바꾸어놓았다고 털어놓는다. 김기덕과 <비몽>을 찍던 시절의 오다기리와 <마이웨이>를 완성한 오다기리는 어쩌면 조금 다른 배우가 됐을지도 모른다. “김기덕 같은 감독이 내 가치관에 맞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재능있는 사람하고만 작업하고 싶었고, 나에게 재능이란 건 무조건적으로 예술적인 재능이었다. 그런데 <마이웨이>를 찍으면서 재능에 대한 가치가 바뀌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고, 많은 의견을 조율해서 반영하고, 수천 컷을 계산해서 찍어내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엄청난 재능이었다. <마이웨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변화의 지점에 서 있는 배우 오다기리 조는 이제 서른다섯이 됐다. 결혼을 했고(부인은 여배우 가시이 유우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생애 첫 번째 블록버스터를 찍었다. 어제의 오다기리 조는 오늘의 오다기리 조가 아니다. 내일은 더더욱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