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올해 초 잠시 한국을 떠나야 겠다고 결심했던 순간, 가장 큰 망설임을 안겨준 존재는 의외로 친구도 연인도 아니었다(사실 내가 없다 해도 열심히 그들의 삶을 꾸려나갈 이들에 대한 걱정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10월이면 열릴 부산영화제였다. 습관과도 같은 귀향길이었다. 뉴욕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몇년을 기다린 의 호텔방문을 열지 못하고 온것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연처럼 비상하던 그 소녀가 <하나와 아리스>에서 토슈즈를 신고 춤추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부산영화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인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는 뉴욕영화제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을 만든 아네스 자우이의 <룩 앳 미>를 개막작으로 알모도바르의 <나쁜 교육>, 허우 샤오시엔의 <카페 뤼미에르>같은 영화들이 줄줄이 상영되는 업타운의 링컨센터 앞에서, <천국의 문>의 무삭제판부터, 희귀한 무성영화, 국적,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영화들을 볼수있는 시네마테크로 둘러싸인 이 영화의 도시 한복판에서, 나는 지금 누구보다 사무치게 부산영화제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떤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가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였는지는 그들을 떠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증명되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여행은 좀더 의미있는 귀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나는 집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떠나와 있다. 하지만 왜, 어떻게 돌아가야하는 가에 대한 대답과는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백은하(<씨네21> 뉴욕통신원, <우리시대 한국배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