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도 무색하다. 영화 <약속>의 순애보 건달 공상두, <달마야 놀자>의 악바리 재규, <범죄의 재구성>의 능글맞은 최창호의 얼굴이 되었던 단단한 사람.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다. <파리의 연인>은 이따금 작품명 대신 “애기야 가자”라고 불리고, <쩐의 전쟁>과 <싸인>은 지금까지도 밈으로 활용된다. 대중문화 예술사에서 박신양 없는 시기를 상상하긴 어려웠다. 그랬던 그가 지난 14년 동안 오직 그림만 그렸다. 2023년 엠엠아트센터에서 첫 전시 <박신양: 제4의 벽>을 선보인 그는 어떤 작품도 판매하지 않으며 미술계 안팎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수익에 기대는 순간 작가는 자유를 잃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잘 팔리는 그림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얻기보다 (팔리든 말든) 자신의 그림에 대한 진솔한 감상과 반응에 교감하고 싶었다. 3월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문을 연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은 작가 박신양의 작업실을 그대로 구현하며 관객과 그림, 그림과 작가, 작가와 그림 삼각구도에 존재하는 제4의 벽을 재해석한다. 그림에 깃든 정령이 있듯, 작업실에도 정령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실제 광대 분장을 한 배우들이 전시관 곳곳에서 즉흥연기를 펼친다. 보다 즐기기 쉬워진 공간 속에서 모든 관객은 팔레트 위에 다채롭게 녹아든다. 예술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예술의 난이도는 누가 결정하는가. 오랫동안 관객을 앓게 했던 물음 앞에서 작가 박신양은 헷갈리지 않는 명확한 답을 말한다. 이젠 우리가 그림에 응답할 차례다.
- 이번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은 진입장벽 없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전시, 아무 정보 없이도 누릴 수 있는 전시, 쉽게 즐길 수 있는 전시로 만들고 싶었다고. 이 말은 반대로 현재 많은 전시들이 진입장벽이 높고, 정보가 있어야 제대로 누릴 수 있고, 정보 습득에 난이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신양 작가가 바라본 현재 전시 문화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이 미술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미술은 잘 모르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미술에 대해 뭘 알아야 할까. 누가 사람들을 ‘미술에 대해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어놨을까.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듣기를 잘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왜 그림과 전시는 아직도 어려운 장르로 인식되면서 우월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걸까. 이러한 맥락이 사회에 특별히 좋은 영향을 주고 있지도, 별다른 의미를 지닌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2023년 평택에서 첫 번째 전시를 할 때 그림을 팔지 않는다고 하자 한 방문객이 너무 기뻐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평등하잖아요”라고 하시더라. 갤러리에 들어갈 때 ‘그림을 살 사람인가 사지 않을 사람인가’ 스캔당하는 게 불쾌했다고 덧붙이면서. 그때 그림과 미술이라는 단어만으로 얼마나 많은 불평등이 만들어져왔는지 생각해봤다. 그림으로 관객을 평등하게 대할 때, 그것만으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전시는 어떻게 하면 쉬워질 수 있을까. ‘전시’라는 말에 들어 있는 모든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우리 전시에 해당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쑈’라는 이름을 붙였다.
저항은 예술의 미덕
-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싶어 하는 세상에 절충하는 것과 모두가 편하게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종이 한장 차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이 둘을 어떻게 구분했나.
예술과 전시 모두 사람을 향해 있느냐가 그 기준이 되는 듯하다. 작가 입장에서 <박신양의 전 시쑈 제4의 벽>은 참 오랫동안 고민해온 내용이다. 관람객을 위하고 싶다는 수많은 고민 끝에 전시 형태를 떠올렸지만 사실 그보다는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누릴 즐거움과 기쁨이 존재해야만 했다. 그 즐거움 없이 사람들이 전시를 편하게 즐길 수는 없다.
-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의 가장 큰 특징은 작업실처럼 구현된 전시장에 피에로 분장을 한 정령들이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연극을 펼친다는 점이다. 전시와 다른 포맷의 예술이 융합된 사례는 많지만 왜 노래나 춤, 연주가 아닌 연극이어야만 했나. 결국 배우 박신양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인가.
관람객에게 나의 전시가 그림과 연극적 요소, 공간적 확대가 함께 합쳐진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랐다. 또 연극적 요소를 통해 관객들이 미술에 접근하는 즐거운 계기가 되길 바랐다. 미술이 어렵다면 연극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 것이다. 미술 전시가 어렵다면 연극을 보러 간다고 생각해도 좋다. 연극도 어렵다면 쇼를 보러 간다고 여겨도 충분하다. 여전히 세종문화회관도, 그림도, 작업실도, 제4의 벽도 어려울 수 있지만 광대를 보고 어렵다고 할 관객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미술과 예술은 쉬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 최근 예술영화 사이에서는 연극을 통해 슬픔을 소강시키는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고스트라이트> <센티멘탈 밸류> <햄넷>).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전시와 연극이 함께할 때 어떤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하나.
평면의 회화를 감상하는 방법은 다른 방식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고정되어 있다. 그림은 그렇다쳐도 전시 방법까지도 다른 방식이 구현되기 어렵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작업실을 방문한 많은 이들이 그림이 스탠드에 올려져 있는 것에 호기심을 갖더라. 그 풍경을 14년간 봐왔다.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그림은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야만 하는 대상인데 바퀴가 달린 스탠드에 올려져 있다니. 그걸 신기해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움직임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사람의 움직임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있어야만 시점과 시선, 시야가 적극적으로 확대된다. 그게 이번 전시에 광대 모습을 한 정령들이 등장한 이유다. 나는 우리 전시의 제4의 벽이 고정되지 않고 가변적이길 바랐다. 2023년 전시는 위에서 아래로, 화가가 작업하는 것을 관객이 내려다보는 수직적 구도였다. 즉 천장이 제4의 벽이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상상과 현실이 제4의 벽이 된다. 배우와 관객, 관객과 그림, 배우와 그림 사이로 계속해 벽이 변화하는 것이다. 배우의 퍼포먼스는 관객의 상상일 수 있고 그림 감상을 방해하는 현실일 수도 있다. 무엇이 진짜일까. 이사이 어디에 제4의 벽을 둘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무엇보다 전시를 보다 보면 집중만 하지 않고 이완도 동시에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회화 전시가 구사할 수 없는, 혹은 구사하지 않는 다층적 시점과 차원이 자연스레 생성된다.
-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전에 구체적인 얼굴과 표정을 갖고 있던 투우사, 당나귀 심지어 자화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흐릿해진다. 종국에는 추상화와 가까워지는데 한 작가의 구상화가 추상화로 변하기까지 평균적으로 몇십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박신양 작가는 이 변화를 14년 만에 이뤄냈다.
언뜻 구상화와 추상화는 그림을 구분하기에 적합한 분류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이 구분이 생겨난 이유를 돌아보면 눈으로 볼 때 작품이 사진 찍은 것과 비슷하냐 안 비슷하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평가하는 데 오히려 사진이 근거가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진이 나오기 전에는 추상화가 없었다. 오직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표현만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진이 생겨나자 사진 반대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이 구상화고 무엇이 추상화냐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감각을 자극하냐는 것이다. 현대 예술을 이야기할 때 가장 첫 번째 근거가 되는 것은 감각이다. 명확한 구획으로 장르를 구분하는 것보다 감각의 원천을 들여다보는 게 더 선행되어야 한다.
- 뭐랄까. 관습과 제도를 뒤집고 싶은 반골 기질의 성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데 강도가 센 편이긴 하다. (웃음) 반골이라고 하니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관습은 지켜져야 하는 걸까?
- 시대에 맞춰 개선되어야 하지만 사회에 필요한 구석도 있다.
나는 완전히 때려 부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봐야 잘 안 때려 부숴지기 때문이다. 관습은 시스템을 편리하게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거기서 편리한가? 관습이 진정 개인의 자유를 도와주고 분발시켜주고 있는가? 이 측면에서 나는 모든 당연한 것을 깨부수고 싶다.
오직 그림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
- 한편의 그림을 그릴 때에도 많은 철학을 거친다. 사과를 그린다고 가정하면 ‘사과란 무엇인가. 둥글고 빨간 것만이 사과인가’와 같은 질문을 한다고. 보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 즉 대상의 표면을 종이에 옮겨 담는 것을 그림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의미가 박신양 작가에게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재현의 방식을 그림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재현의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재현은 회화보다 사진과 영상에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럼 그림에 무엇이 남을까. 바로 표현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바라봐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대상을 깊이 파악하고 동시에 그 대상을 대하는 ‘나’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궁극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일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인간이 무언가를 제대로 바라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각기 다른 해석만이 공존하는 건 아닐까.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렇게 말이라도 찾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말로 소통을 시도해볼 수 있다. 단순히 ‘본다는 건 중요한 거야, 그리기 전에 봐야 해’라고 순진무구하게 말하는 게 아니다.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바라보고 거기에 남은 감각을 그림으로 그려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로, 언어로 좁혀들어가다 보면 결국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혹시 나도 그렇게 될까 걱정했지만, 아니었다. 그보다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에너지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 지금 답을 듣다보니 예술적 무아지경을 경험한 작가의 기쁨과 슬픔이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지난 14년 동안 오직 미술에만 전념했다.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 얘기를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는데 일상생활을 추억해보라고 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림 그리는 데에만 몰두한 채 지냈다. 만약 내가 멀쩡했다면 ‘그림에 잠시 심취했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모든 게 피폐했다. 지금 이렇게 멀쩡히 앉아 있는 것에 속으면 안된다. 전혀 상상도 못하는 방식으로 처참했다. 그런 상태에서 왜 그렇게 그림에 몰두했던 걸까. 아침에 일어나서 의지를 단단히 갖고 헬스장에 간다. 30분 걷다가 도저히 못 걷겠어서 다시 집에 돌아가 잠에 든다. 그런 와중에 꾸역꾸역 그림을 그렸다. 이건 그림이 좋아서일까, 살고 싶어서일까. 그림 그릴 때면 멀쩡히 일어나 있을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순수한 예술의 의지일까. 도대체 무엇일까.
- 오직 그 언젠가의 박신양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렇다. 그때 그림 그리기를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도 있었는데 끝내 그렸다. 혹은 그림이 아니라 등산이나 낚시였을 수도 있었지만 꼭 그림이었다. 답을 찾게 되면 또 그림에 반영할 것 같다. 대상보다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느냐가 중요한 이유이다.
- 이번 전시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이후 한국 생존 작가에게 장기간 전관을 내준 첫 사례다. 주어진 준비 기간이 3개월, 연말·연시·설날이 모두 포함돼 일정적으로 극악한 조건이었다고.
제4의 벽이라는 컨셉은 계속 고민해왔지만 특정 장소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고, 관객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전시가 구현됐을 때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할 일이 참 많았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걱정하며 서두르다가 독감에 걸려 2주간 일어나지도 못했다. 날씨는 왜 그리 춥던지. 정신을 차리고 안동에 계신 건축사님께 전화를 걸어 유로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활용할 중요 소재였다. 지금 이 일은 누구에게 설명해서 될 일이 아니란 판단이 들었다. 설명도 한가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 없는 방법은 무엇인가. 눈앞에 구현해두는 것이다. 그래서 유로폼으로 중심 소재를 결정한 후에 400평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과 같은 크기의 실물 세트를 짓고, 그것이 들어갈 수 있는 더 커다란 창고를 찾았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전국에 거대 창고는 많지만 사정에 맞는 창고는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기적적으로… 천만다행으로… 커다란 창고를 발견했다. 설치물을 미술관에 옮기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거의 불가능이었다. 그런데 해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도 믿기지가 않는다.
- 전시를 보면서 감정적 고조를 북돋았던 건 곳곳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다. 에디트 피아프부터 일 디보, 듀엣 버전의 는 오랫동안 잠잠했던 감성을 마구 헤집는다.
플레이리스트는 지금도 계속 보강하는 중이다. 작업실에서 지난 십몇년 동안 내가 들어온 노래들이다. 작업실에서 노래를 들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그리고 작업실 옆 골프 연습장 소리 때문에. 대포처럼 울려 퍼진다. (웃음) 많은 전시에서 음악을 틀지 않는 이유는 전시 기획에 맞는 음악을 정확한 시간 단위로 쪼개서 구성하기가 어려워서다. 한마디로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이 전시는 내 작업실이라는 컨셉으로 시작했고, 내 작업실이라면 당연히 음악이 있어야 했다. 물론 올드한 노래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언제나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