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의식을 동물 로봇으로 옮기는 혁신적인 ‘호핑 기술’을 알게 된 메이블은 할머니와의 기억이 담긴 연못을 되살리고 시장 제리의 도시개발을 막기 위해 비버 로봇의 몸으로 들어간다. 영화 <아바타> 플롯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는 생태계 다양성 논제와 함께 동화적 해피 엔딩을 상상하게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예측 불가함, 비인간의 관점에서 포착한 인간중심주의, 다종(種)의 위계와 권위주의 등 블랙코미디와 뒤엉킨 초현실은 다소 거칠고 자유분방했던 픽사 스튜디오의 초창기를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엉뚱하고 골 때리는 장면이 바로 지금, 완성될 수 있었을까.
- <호퍼스>는 도시개발과 생태계, 종 다양성 존중과 공생을 다룬다. 현실에서도 논쟁적이고 예민한 소재를 중심축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대니얼 총 <호퍼스>가 처음 시작된 건 2019년이다. TV애니메이션 <극장판 위 베어 베어 스: 곰 브라더스>를 막 마치고 픽사 스튜디오에 들어와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장편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5~6년이 걸리고, 실제로 <호퍼스>도 6년이 걸렸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주제 선정이 제일 중요하다. 미래에 이야기해도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봉 이후에도 관객들이 자신과 연관돼 있다고 믿을 만한 것. 나는 여기서 실존적 위협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인간이 평생 마주해야 하는 문제의식 같은 것들. 거기서 생태계 문제를 떠올렸다. 물론 이 주제는 당신이 말한 것처럼 매우 논쟁적이지만 이야기 끝에 탈출구 같은 잠재적 가능성이나 희망을 준다면 다른 접근이 될 거라 믿었다. 단순히 해피 엔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삶의 방향을 지금부터 아주 조금 틀어도 괜찮다고 안심하게 만드는 것, 그게 중요했다. 사람들이 자신이 소속된 세상에 무기력함을 덜 느끼길 바랐다.
니콜 그린들 무엇보다 대니얼은 유머라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날 “엄청 웃기고 괴상한 환경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길래 그 말을 듣고 단번에 합류했다. (웃음) 유머는 이 시대의 재능이다. 유머는 심각한 주제도 그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게끔 만든다. 우리는 즐겁게 웃으며 숨 쉬다가 그 핵심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만다.
- 메이블의 캐릭터디자인 또한 눈에 띈다. 전형적인 미적 기준에 맞추지 않고, 메이블 스스로도 예쁘고 싶은 욕망이 없다. 그저 편하게 활동하길 좋아하는 스케이트 걸이다.
대니얼 총 메이블을 투지 넘치는 여자아이로 그리고 싶었다. 메이블은 자연 그 자체다. 그래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캐릭터디자인에 반영했다. 거친 머릿결과 찢어진 옷. 몸에 상처가 나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야생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친 액션 스파이 스릴러 속 예측 불가능한 여자주인공처럼 드러나면 좋겠다고. 우리는 메이블이 어떤 행동을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옳은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니까.
- 시장 제리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고 이웃에게도 친절하다. 집이 그렇게 크지 않은 걸 보면 부자도 아니다. 완전한 악당으로 설정하는 순간 도시개발은 악의적 행동으로 납작해지고 마는데, 그저 성실하고 이해타산적인 정치인으로 표현하면서 도리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대니얼 총 제리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다. 영화는 제리가 시민들과 약속한 것들, 이뤄내야 하는 목표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람들은 적대자의 동기를 이해할 때 훨씬 더 생각이 복잡해진다. 단조로운 악당을 누가 신경 쓸까? 그건 재미없다. 유권자들에게 크나큰 지지를 받는 그는 상냥하고 친절하다. 노모를 돌보고 키스를 해주며 인간적 가치도 명확하다. 여기서부터 합의 카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서로 다른 두 의견을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 이렇게 다른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여기서 문득 질문이 생긴다. 포유류의 왕이 왜 비버인가.
대니얼 총 이 질문이 꼭 나와주길 바랐다. (웃음) <호퍼스>에서 비버들이 하는 일을 습성이 아닌 과업으로 바라보자. 서식지를 만들고 연못을 이루고 집을 짓는 순간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모여든다. 모든 이들이 공존하고 생태계가 회복된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비버들이 하고 있다. 생태계 엔지니어. 비버를 다른 말로 부른다면 이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리서치 과정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소리쳤다. “유레카! 비버가 포유류의 왕이구나?” 픽사는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매 작품의 정보를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한다. <호퍼스>또한 생태계 전문가를 모아 현실성 검증과 자료 수집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비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니콜 그린들 처음에 피칭할 때에는 펭귄이었잖아. (웃음) 그런데 피트 닥터 CCO가 반려했다. 펭귄 애니메이션은 기존에 너무 많다고.
- 다소 그로테스크한 블랙코미디도 무척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영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특히 손바닥 치기와 관련된 장면. 이 장면에 반대한 사람은 없었나. (웃음)
대니얼 총 피트 닥터가 그 장면을 엄청 좋아했다. 영화에는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 기괴한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멈출 거라고, 그것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될 거라고 했다. <호퍼스>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무척 슬프고 어둡기도, 너무 웃기고 어이없기도, 황당하고 터무니없기도 하다. 이게 내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바이기도 하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6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분위기의 균형점을 찾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때 이 모든 톤을 균일하게 빚어준 게 코미디였다. 어둠과 슬픔, 심지어 우울까지도 코미디 위에 놓이면 마치 컬러 렌즈를 얹는 것처럼 적절한 톤을 얻게 된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우산으로 우리는 코미디를 손에 쥔 거다.
니콜 그린들 손바닥 치는 장면에서 우리 모두 마음이 쫄리는 느낌을 경험한다. (웃음) 곤충들이 모두 “인간을 죽여버리자!”라고 표현하지 않고 “으깨버리자!”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곤충의 관점에서 죽음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으깨지는 건 어느 정도의 압력을 받는 것이지만 곤충들에겐 생사와 직결된다. 곤충 중심적인 표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을 다시 관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