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임>에 어울릴 또 다른 제목을 상상한다면 ‘도어’다. 이 영화의 종소리는 밖에서 들린다기보다 잠긴 문 안쪽에서 해묵은 원념처럼 새어나온다. 환청에 시달리던 수강생이 제 머리에 칼을 꽂은 뒤, 이를 지켜보았던 요리 강사 마츠오카(요시오카 무쓰오)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광기의 출처도, 폭력의 논리도, 해방의 의미도 끝내 언어화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문이 열린다. <회로>로 소급되는 초기 호러의 감각과 <큐어>의 정신적 지형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이 중편은 일본에서 디지털 플랫폼 로드스테드(Roadstead)의 한정판 오리지널로 공개된 뒤 미니시어터를 거쳐 2026년 3월 한국 극장에 도착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는 2025년 연말, 그가 회고전으로 서울을 찾았을 때 겨울비 속에서 미리 만났다.
- 마츠오카의 수강생 타시로는 자신을 외부의 힘이 점유한 하나의 매개로 취급한다. 넓게 보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 스민 신체강탈자의 모티프(<지옥의 경비원> <큐어> <산책하는 침략자>)를 잇는 인물로, 곧 마츠오카까지 전염시킨다. <큐어>의 배후에 최면술사 마미야가 존재했다면 <차임>엔 그저 모호한 소리가 공기 중을 부유할 뿐인데 어떤 공포를 그리고자 했나.
= 우선 타시로를 선명한 원형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어떤 소리가 들리고 자신이 무언가에 점령당했으며 머릿속에 기계가 심어져 있으니 그것을 꺼내야 한다는 상태는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의 임상 연구에서 자주 기술되는 증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병증이 있는 타시로와 자신을 구별하는, 스스로를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환청을 겪으면서 비로소 변모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를 쓸 때 처음 생각했던 것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누가 되든 그가 한꺼번에 세 가지 공포를 경험하는 이야기로 만들자고 생각했었다. 하나는, 자신도 타시로처럼 사람을 죽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 또 하나는, 죽인 그 사람이 유령이 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공포.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죄가 발각되어 경찰에 붙잡히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살인, 유령, 경찰, 이 세 가지 공포가 한꺼번에 주인공에게 밀어닥치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 살인, 유령, 경찰이 모두 나오는 영화지만 결국 주인공을 가장 크게 해치는 건 자기 자신인 셈이다.
= 그럴 수도 있겠다. 마츠오카는 집착이 있는 남자다. 일상을 이대로 놔두면 안되고 반드시 여기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일상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헛발질을 한다. 자신의 욕망과 자신이 처한 상황의 모순에 완전히 농락당하는 인물로 그렸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인물이 세 가지 공포를 경험함으로써 해방되기를 바랐다. 그 해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걸로 됐다’는 느낌, 문을 열고 나와서 ‘이 공포를 내가 전부 받아들이겠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결말에서는 강압적인 형태로라도 인물에게 어떤 생기 넘치는 모습을 부여하고 싶었다.
- 엔딩 신의 전환이 뜻하는 바는? 열화된 화면과 거칠어진 핸드헬드 움직임이 강조되고, 사운드 역시 앞서 지속된 정적이고 통제된 형식과는 사뭇 다른 강도와 디자인을 보여준다.
= 마츠오카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바깥이 되는데, 그 외부 촬영 부분만 16mm 필름으로 찍었다. 그때까지 계속 디지털로 찍던 것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찍히고 있는 곳은 집에서 나와 그대로 조금 걸어간 곳으로, 특별히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도쿄 교외의 골목길 풍경이다. 주인공에게 완전히 신선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장소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사운드도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이질적인 노이즈 같은 음악을 한꺼번에 넣었다. 바깥에 유령이나 경찰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문을 열었지만 그냥 자기 집 앞이었다는 것. 어쨌든 그 용기에 의해 그에게는 무언가를 극복하고 넘어선 다른 세계가 열릴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바깥과 안쪽, 양쪽 모두를 향해 그때까지의 안절부절못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마주하는 모습으로 끝내려 했다. 45분이기 때문에 이런 무리한 전환의 구조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 환청음이 인물에게도 공유되는 내재음인지 효과음인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든 지점들도 흥미로웠다.
= 현실에서 이 소리가 확실히 들리고 있다는 음과, 이 사람에게는 들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음, 그리고 관객은 듣고 있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실제로 흐르지 않는 음까지, 같은 소리여도 영화 안에서 여러 레벨로 교묘히 존재할 수 있다. 이건 복잡한 지각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그리는 현실을 우리가 아는 현실과 어느 정도 같게 볼 것인지, 조금 다르게 볼 것인지에 따라 관객 각자의 판단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따지고보면 영화 사운드의 처리란 게 근본적으로 늘 그렇다. 나와 사운드 전문가와 앉아서 한다는 말이 ‘잠깐만 이 소리는 인물에게 들리고 있는 건까? 어떻게 처리할까?’ 같은 것이기 때문에. (웃음) 그러니까 <차임>은 소리가 누구에게 들리고 누구에게 들리지 않는지를 생각하면서 집요하게 배분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갖고 노는 작업에 더 몰두해본 경험일 수 있겠지.
- <차임>에선 오프닝의 천장 배관음, 생활을 지배하는 다양한 금속성의 소리가 긴장을 조성한다. 당신은 때로 사운드가 이미지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영화 작업의 어느 단계에서부터 소리의 세부를 구상하나.
=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에서는 일부러 사운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실은 영상에 대해서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소리와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발상되기 시작하는 것은 촬영 장소가 정해지고 나서다. 이 장소라면 여기서 이렇게 찍을 수 있다, 이 장소라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질문한다. 실제로 특정 장소에서 나는 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경우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요리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전차가 지나가면서 큰 진동과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시작이다.
- 2025년 베를리날레 공개 당시, 요리 강사로 생계를 꾸리는 와중에 더 높은 수준의 셰프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주인공의 내적 분열이 예술가인 본인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도쿄예술대학 대학원 영상연구과에서 오랫동안 영화를 가르쳐온 감독의 위치가 인물의 탄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 주인공을 누구로 할까 고민할 때 처음 떠오른 것이 대학교수였다. 무언가 만들고 싶지만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갇히는 심리적 함정은 나나 지인들에게 곧잘 발견된다. 그 범주를 더 넓혀보자고 생각하고 설정을 대학교수에서 요리 강사로 바꾸었다. 한편으로는 가르친다는 행위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말로 대신하는 작업이란 생각을 한 적 있다. 영화란 이런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찍어야 한다, 언어로 만들면 만들수록 정작 자신이 찍으려 하는 것은 거기서 점점 멀어져간다. 그러다 실제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망에서도 멀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말로 잘 되지 않는 것이다.
- <차임> <클라우드> <뱀의 길> 리메이크를 한해에 완성했고, 사극 신작 촬영도 마쳐서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아직도 왕성한 창작 활동의 원천이 무엇이라고 보나.
= 회사에 다녔다면 정년퇴직을 했겠지만 이 일은 그런 것이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정신 차리고 보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작품은 전달이 잘 안된 것 같다, 이 작품에선 하려고 했던 것이 잘 안됐다’ 하는 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화를 찍어보자고 다음, 또 그다음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영화를 찍게 되는 이유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대표작이 아직 없기 때문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