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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클로징] 28년 후

‘IMF에 200억달러 요청.’ 1997년 11월22일, 나는 조간신문 헤드라인에 소스라쳤다. 한해 전, 중2 사회 교과서에서 ‘IMF’(국제통화기금)를 보고 친구에게 한 말이 있었다. “나라 꼴 보니 우리도 여기 손 벌릴 날이 온다.” 부정 탔나 싶어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때 가장 먼저 눈에 밟힌 것은 주식이었다. 주가 폭락으로 빚더미에 눌린 분들은 가까운 친지 중에도 있었다. 알아보니 주식거래는 유상증자 등 신주발행이 아니라면 기업으로 직접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유익보다 투기적 성격이 더 짙어 보였고 이것은 내가 주식과 거리를 두고 산 배경이 됐다. 처음 주주가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초심은 소박했다. 고물가-금리인하 국면의 자산 방어. 여전히 주식 투자금보다 정기예금의 비중이 더 크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돈맛에 슬슬 변해갔다. 연초의 ‘랠리’ 속에선 사나흘 잠을 설쳤다. ‘주식에 다 넣을걸!’ 벌어도 이 모양이라니. 미련에서 헤어나는 데 스무날쯤 걸렸다. 하루는 나스닥의 어떤 폭등 종목에 자투리 돈 18만원을 넣고 잤다. 일어나 실현한 수익은 무려 해산물 뷔페 3인분 상당. 이런 건 곧장 털기로 하고 동생과 후배 하나를 불러 모아 숟가락을 들다가, 문득 어느 엄마, 아빠들을 떠올렸다. ‘나는 왜 주식투자할 돈도 없고 애들 맛난 것도 못 사주나’ 하는. 주식 보유자는 갈수록 늘겠지만, 그와 함께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골도 벌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물론 보유자도 다 같은 보유자가 아닐 것이고. 1월22일 나는 주식을 팔아 한국방통대 등록금을 냈다. 그러나 뿌듯한 것도 잠시, 노동소득이 줄었다. 어느 뉴스 채널로부터 하차 통보를 받았다. 그날 현대차는 아틀라스 로봇을 생산라인에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급등하던 주가가 노조의 반발과 맞물려 급락하자 재벌과 공권력 이상으로 무서운 악플이 노조에 퍼부어졌다. 로봇과 일하며 로봇의 실책을 수습하는 주체는 노동자이지 주주가 아니다. 감봉이나 해고를 재테크로 만회할 노동자는 극소수다. 그러나 어느새 주주나 소비자는 노동자, 생산자를 압도하고 있다(‘탈팡’의 도화선도 노동자 과로사는 아니었다). 바야흐로 ‘개미’는 신흥 정치 강자다. 어떤 개미들은 여야가 합의했던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여야 합의로 무산되게 만들었다. 금투세의 부과 대상은 보유 주식이 아니라 연 5천만원을 넘는 양도소득이다. 주식 매도 차익에도 과세하지 않으면 무슨 명분으로 노동소득이나 실거주 부동산에 과세 내지 증세할 수 있나. 이재명 대통령은 “쭉 손해보고 어쩌다 이익 본 사람은 억울하다”라고 했으나, 그런 주주는 손익통산과 이월공제를 적용받아 빠질 터였다. 주주는 면세가 아니라 기대수익을 좇는다는 이치도, 세금내기 싫어 매도를 절제하면 오히려 시장 안정에 이롭다는 지적도, “세금 물리면 빠져나간다”는 우격다짐에 모두 묻혔다. 최근 정부와 여러 기업들은 자사주소각과 배당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 연구개발, 급여 상승이 뒤 순위로 밀리지 않을지 걱정이다. 태평양 너머 저 나라는 전 세계 주식 시총의 절반을 점하고 있지만 선박과 배터리 공장을 짓는 일은 버겁다는데. 기업에 깔리던 개미는 이제 기업을 먹는다. 폭락 증권처럼 쓰러졌던 한국 사회는 28년 후, 주가를 쫓고 주가에 쫓기며 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