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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뉴욕의 돈과 심장 사이,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파이크 리 감독 배우 덴절 워싱턴

줌 화면이 열리자 두개의 뉴욕 닉스 모자가 화면 아래쪽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져 있다. 스파이크와 덴절 듀오는 연신 고개를 흔들거리며 수다를 떨기 바빴는데, 아마도 카메라 각도 조절에는 실패한 듯하다. 홍보 담당자가 겨우 만담을 제지하자 초면인 기자에게 10년 지기에게나 할 법한 격의 없는 인사가 날아온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1963년작 <천국과 지옥>을 현대 뉴욕 힙합 신으로 옮겨온 Apple TV+ 신작 <천국부터 지옥까지>에서 호흡한 스파이크 리 감독, 그리고 배우 덴절 워싱턴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천국부터 지옥까지>는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명망 있는 음악 프로듀서 데이비드 킹(덴절 워싱턴)이 아들의 몸값을 납치범과 협상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거리의 젊은 예술가 집단과 얽히는 범죄스릴러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계급·유산·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가로지르며 흥청거리는 음악산업의 굴곡을 지극히 그다운 뉴욕 소동극 속에 녹여냈다.

스파이크 리, 덴절 워싱턴(왼쪽부터).

- <모베터 블루스>(1990)부터 긴 시간 동안 동료애를 쌓다가 18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했고 5번째 협업을 완성했다.

스파이크 리 나는 70살 생일을 앞두고, 이제 끝이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끝내기 전에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이다. 대본이 내게 왔을 때 ‘누가 이 이야기를 나만큼 잘 들려줄 수 있을까?’를 가장 먼저 질문했다. 그러고는 곧장 단연코 내 친구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덴절 워싱턴 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을 분석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무릎이 더 아프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단순히 함께 작업하는 시간에만 기반을 둔 게 아니다. 작업 밖에서도 꾸준히 서로를 보았고 우리 둘뿐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해왔으니. 매니저가 어느 날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스파이크가 대본을 보냈어’라고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잠시 후에 대본을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출연할게’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긴 시간 여전히 열정적인 사람을 보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내겐 스파이크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항상 그렇다.

- 원작 각색의 기조를 어떻게 설정했나.

스파이크 리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1963년 제작되어 당대의 일본을 그렸고, 이 영화는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거장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심을 담아 말하자면, 바로 그 점에서 내가 <천국과 지옥>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이 작업은 리메이크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야만 했고 그 부분이 가장 중요했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부각하고자 한 흑인 문화유산의 특정한 면모가 있었다면.

스파이크 리 스크린 속 벽에 걸린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라. 선정된 음악, 등장하는 캐릭터들, 이 모든 것이 나이고 흑인 문화다. ‘흑인 정체성’을 이 영화에 담기 위해 특정한 스위치를 켤 필요가 없었다. 그게 바로 내 정체성이고, 내가 만드는 영화에서도 혼동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1963년에 미국 소설 <킹의 몸값>(1959)을 느슨하게 각색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용기와 선택을 존경하며, 소설 플롯의 씨앗부터 구로사와의 영화까지 그 모두가 내 재해석을 제약하기보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했다고 말하고 싶다.

- 덴절 워싱턴 배우가 당대 일본영화계의 아이콘이었던 미후네 도시로의 영향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궁금하다.

덴절 워싱턴 <천국과 지옥>을 아예 보지 않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스파이크의 신작은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럴 때 배우로서는 대본에 충실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 원작보다 납치되는 아들의 나이대를 높인 이유가 있을까.

스파이크 리 아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내게는 더 강조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되려는 17살 청년이지 않나. 이쪽으로 갈 수도 있고 저쪽으로 갈 수도 있는 나이다. 그래서 덴절의 캐릭터는 아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막으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저울질한다.

덴절 워싱턴 종종 의식적으로 아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했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들이 아버지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모든 아버지들도 아들에게 떳떳하고 싶어 한다.

-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를 통해 마이클 잭슨 등의 여러 거물 뮤지션들과 작업해왔다. 신작에서 에이셉 라키를 캐스팅한 이유는.

스파이크 리 에이셉 라키는 넷플릭스 영화 <몬스터>에서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이 남자가 정말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확신했다. 겉으로만 폼 잡는 배우가 아니다. 뮤지션이면서 진지한 배우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았을 거다. 바로 옆에 있는 이 친구(덴절)와 함께한 장면에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담력이 있다.

- 영화가 묘사하는 동시대 음악산업은 AI에 잠식당하고 있다. AI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스파이크 리 나는 기술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에 관해서라면 우리의 기계가 아직 심장과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은 이 두 가지를 갖고 있고, 그걸로 위대한 것을 창조한다.

- 영화에는 “명성만이 오늘날의 유일한 자본”이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덴절 워싱턴 실로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세상 아닌가. ‘팔로워가 몇명이지? 얼마나 유명하지?’라는 질문이 어느 때보다 돈 버는 일과 연관된다. 우리가 너무 옛날 사람들처럼 보일까봐 답변하기 조심스럽다. 옛날에는 이랬고 저랬고 하는 식으로. (웃음) 다만 안타까운 건 이 모든 게 사실이란 점이다. 팔로워나 명성보다도 온전한 재능과 성실함을 가진 사람들을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물론, 바쁘기만 한 세상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 음악산업을 빌려 펜트하우스와 도심의 거리까지 수직 낙하하면서 계급 풍자극을 펼치는 <천국부터 지옥까지>가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건네려는 말이 있을까.

스파이크 리 모든 돈은 결코 좋은 돈이 아니다.

덴절 워싱턴 이 영화는 현대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국부터 지옥까지>의 진정한 기본명제는 인간의 도덕성에서 출발한다.

사진제공 Apple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