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일 오후 4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씨네21〉 창간 30주년 특별전 ‘지극히 사적인 영화관’이 열렸다. 특별전은 3주 동안 진행되며 천우희와 이제훈, 박정민 배우가 스페셜 프로그래머로 참여해 각자가 선정한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를 한 차례씩 상영한다. 첫 순서는 천우희 배우다. 그녀는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을 선정했다. 이 영화는 우울 증을 앓는 30대 여성 연주(김혜수)와 그녀에게 보물을 훔치려는 남자 창인(한석규), 한때 아역배우로 유명했으나 평범한 중학생이 된 연주의 딸성아(지우)의 앙상블이 인상적인 코미디다. 천우희 배우는 <씨네21> 김소미 기자와 함께 영화를 선정한 이유와 이 영화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우희 배우가 <이층의 악당>을 고른 과정은 까다로웠다. “‘손병호 게임’을 하는 마음으로”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등 거장 감독의 작품들과 자신이 출연한 영화, 천만 영화, 연출자나 배우를 둘러싼 논란이 있는 영화 등은 일단 제쳐두었다. 남은 영화 가운데에서 “무더운 여름날 같이 이야기하기 좋은, 개성 넘치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이층의 악당>을 골랐다(원래 <봄날은 간다> <천하장사 마돈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가운데에서 고르려 했다고 한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석규, 김혜수 배우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천우희 배우가 영화를 고른 이유 중 하나로 두 배우를 향한 각별한 애정이 언급되어서다. 천우희 배우는 이 영화를 “김혜수 배우에게는 전환점을 가져온 영화”이며 한석규 배우에게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연기의 총집합”을 보여주는 영화로 평가했다.
<이층의 악당>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연주에 관해 천우희 배우는 “우울감과 무기력함, 죄책감과 까칠함을 전면에 드러내”는 데도 코미디가 어우러져서 “전혀 불편하지 않은 캐릭터”라는 감상을 전했다. 만약에 <이층의 악당>을 리메이크한다면 연주와 창인 가운데 누구를 연기하고 싶냐는 질문에는 “젠더 스위치를 할 수 있다면 창인을 연기하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박혁권, 이장우 등이 연기한 조연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천우희 배우는 영화가 “어느 하나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유가 조연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연출과 각본의 힘이라는 감상을 전했다. 공간을 활용한 슬랩스틱과 엄마손파이 봉지를 활용한 애잔한 유머 코드에 관한 감상도 나누었다. 거기에 이 영화의 까칠한 유머 코드가 되레 지금 관객에게 맞을 것이 라는 감상도 더했다.
이날 나눈 대화 곳곳에는 “항상 진짜이고 싶어 하”는 인간 천우희만의 지극히 사적인 인생철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그녀는 “허무하되 소소히 일상을 이어가는 듯한” <이층의 악당> 엔딩을 이야기하며 “단순하게 사는 데에 어떤 의미를 두려고 할 때가 있다. 토끼가 어떤 의미를 두고 살지 않는다. 삶 자체가 소중하며 살아가는 일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라는 본인의 인생철학을 관객에게 공유했다. 나아가 이런 “삶에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것이 유머”라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진지한 사람이라 소개함에도 평소 릴스나 짤, 밈을 즐기며 유머 트렌드를 최대한 따라가려 하는 성실함은 유머에 대한 애정의 증거로 다가왔다. 이처럼 평범과 독특함, 진지함과 유머 사이를 끝없이 진자운동처럼 오가는 가운데에서 배우 천우희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천우희 배우는 <이층의 악당>이 “보석이 아니라 나다움을 찾는 영화로 다가왔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함께해준 팬들에게 이 영화가 “진짜 나다움, 진짜 보석을 찾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