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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우즈(WOODZ)의 최애곡 <Drowning>이 최근 나의 SNS 알고리즘을 점령했다. 꽤 예전에 하이라이트만 듣곤 흥얼거리던 멜로디였는데 그게 이 곡이란 건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인트로의 심플한 베이스 멜로디, 삼단 고음 파트 등 킬링 포인트는 수두룩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되는 건 몇 구절의 가사가 가슴에 꽂혔기 때문이다. ‘다정한 말로 나를 죽여놓고’ 구절의 담담함에 취하고,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되니까’ 파트에선 나도 모르는 새 립싱크 중인 자신을 발견한다. 아픔을 한껏 토해내는 모습에 스며들고 마는, 도취 권장곡. 주변에 이 노래 참 좋지 않냐고 영업을 하고 다녔더니 냉동인간 취급을 받았다. 가수가 군대 간사이 1년 전부터 역주행한 뒤 이미 제대까지 했는데 무슨 뒷북이냐는 한심한 눈빛이 쏟아진다. 나도 내가 늦었다는 걸, 남들보다 대체로 시계가 느린 사람이란 걸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정보 과잉 시대의 몇 안되는 순기능이 있다면 시간을 거슬러 당도하는 콘텐츠를 각자의 속도에 맞춰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어색하지 않다는 거다. 유행을 따라가야 한다는, 최신작이 최고작이라는 강박이 옅어지고 마음만 먹는다면 각자 자신이 머무르고 싶은 시절과 속도에 맞춤형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꽤 오래 공들였던 프로젝트 몇 가지가 좌절됐다. 실패는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납득하는 것과 별개로 매번 마음이 깎여나간다. 정확히 무언지 설명할 길은 없지만 무언가 소진되고 있다는 감각만큼은 또렷하다. 그럴 땐 덜 깎이도록 발버둥을 쳐봤자 소용없다. 손으로 가리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만 선명해질 뿐이다. 이럴 때 할 일은 원래 형태로 원상복구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를 투입해야 한다.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 기쁨과 에너지를 선사할 무언가. 이미 깎이고 비워진 공백을 더듬을 것이 아니라 흠뻑 빠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편이 이롭다. 도피와는 다르다. 아파서 죽을지언정 기꺼이 잠길 만한 어딘가에 머물 때 고통만큼 충만함이 채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음악을 사랑하고, 팬이 된다.

이번주 표지는 밴드 DAY6가 장식했다.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밴드의 6일간의 미국 로드트립을 담은 <6DAYS> 개봉을 앞두고 그 영화적인 여정을 소개한다. 특집 역시 이에 맞춰 <스탑 메이킹 센스>로 준비했다.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을 장식한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의 전설적인 무대를 담은 콘서트영화의 마스터피스를 통해 실황 공연 영화 전성시대, 기억해야 할 초심을 확신한다. 30년의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듯, 혹은 운명처럼 2025년 한국에서 함께 개봉한 두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2025년은 명백한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다. <씨네21>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게 말라붙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어선 안된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보다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너무 많은 변수와 수치,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무언가에 흠뻑 빠져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단이 목적이 되기 전에, 더 깊이 빠져 죽어도 될 이유를 되돌아보려 한다. ‘오직 그것만으로’ 행복에 잠겼던 감각을 일깨워야 할 때가 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매번 길을 헤맬 때마다 영화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