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지 못한 자가 숨어 들어간 곳은 그곳이 어디든 흉지다.” 지난해 11월 초 이 지면에 용산 대통령실을 두고 쓴 글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야당 대표가 피선거권 상실 위기에 접어든 지 18일 만에 일어났다. “내가 겁이 많아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야?” 자신과 배우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면 감옥에 간다’라고 불렸던 대선에서 이겼지만, 대통령이 된 뒤 불어난 죄를 정적의 악재로 덮을 수는 없어 자폭했다. 규명과 단죄는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그와 나눈 거대한 부당거래를 돌아봐야 한다. 거대 양당을 포함한 온 나라가 그에게 휘둘렸다.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만 해도 ‘저격수’였던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적의 적’이 되자 호위무사로 변신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다. 박정희 아들도 아니고 재벌 기업 경영자 출신도 아닌 그에게도 꽉 잡혀 산 간신들이다. 그런가 하면 청문회 당시 많고 다양한 의혹들을 놓고 ‘피의 쉴드’를 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부동시로 군 복무 면제가 된 것이 맞느냐’는 의혹이 나오자 갑자기 눈을 찡그려 보인, 속이 빤히 보이는 자에게도 넘어갔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윤석열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직행시키지 않겠다 했다. 비리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총장 욕심을 가지면 임명권자를 의식해 어떤 사건은 무마하고 어떤 수사는 무리하게 벌일 수 있다. 지당한 방침이었다. 그리하여 지위가 낮아진 서울중앙지검장에 늦깎이 검사 윤석열이 올랐다. 하지만 그 뒤 문 정부는 약속을 깨고 윤 지검장을 윤 총장으로 만들었다. 급상승한 승강기에 몇몇이 이의를 제기했다. “원칙은 어렵고 절박할 때 지켜야 빛이 난다.”(‘권석천의 시시각각’, “ ‘총장 윤석열’에 대한 소수의견”, <중앙일보>, 2019년 6월18일자) 그러나 강성 지지자들은 “일단 적폐 청산!”이라며 뭉갰다. 윤석열-윤우진 커넥션을 보도한 뉴스타파에는 후원 중단 통보가 쇄도했다. “언론이 불쾌해한다? 기레기가 불쾌해하면 안되지, 응. 아, 우리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 이런 분위기였다. 보편적 원칙의 붕괴. 이것이 바로 부당거래의 밑바탕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불이익을 봤던 그가 국정농단 특검에 들어간 것부터 이해 충돌이었다. 수사 대상이 박근혜라고 해도 훼손돼선 안될 원칙이 있다. 꼭 윤석열이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때로 너무 쉽게 의인을 만들어 칭송하고, 이는 부당거래의 출발점이 된다. 성찰은 윤 정권에 맞서 싸운 언론에도 필요하다. 2022년 대선 직전, 윤석열-삼부토건 유착 관련 녹취록 보도가 <한겨레>에서 보류되었다. ‘삼부토건’은 ‘도이치모터스’나 ‘부산저축은행’보다도 더 수상하고 더 간단했다. 파주 운정지구에서 삼부토건은 돈과 땅을 쫓으면 바로 나오는 기업이지만 윤석열 검사가 담당한 수사에서 빠져나갔다. 대선 당시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은 “명절 선물 가지고”라며 사안을 호도하고 있었다. 수사 무마 정황을 가리킨 그 녹취록은 이 문제를 가장 깊이 파고든 <한겨레>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야 하지 않았을까. 삼부토건 관련 뉴스가 잇따르고 <한겨레>의 활약이 커지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되짚어볼 일이다. “나쁜 놈들도 많은데 왜 우리가”라는 핑계는 댈 줄 모르는 언론. 내가 아는 <한겨레>는 그렇다.
[김수민의 클로징] 부당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