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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미래와 미지. 가지 않은 길과 가지 않을 길을 구분하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문화강국네트워크 제4차 정책토론회에 참여했다. 실제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AI가 어떻게 활용 중인지 들을 수 있는 귀한 배움의 자리였지만 내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AI가 스토리텔링 영상 콘텐츠의 미래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이는 더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게내 생각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조지 루커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마차를 타는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자동차 시대가 오는 걸 막진 못한다” . AI가 인류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건 자명한 일이다. 다만, 그럴수록 엄밀한 구분과 방향성이 필요하다.

AI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표명되자마자 벌써 우후죽순 행사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AI가 마치 위기를 돌파할 마법의 열쇠처럼 오인되진 않을지 괜한 걱정이 든다. 한때 인터넷이 정보의 평등을 가져올 거라 낙관했고, OTT 스트리밍서비스가 영화의 아카이브를 제공할 거라 기대했지만 경험상 미래는 늘 예상과 다른 경로로 접어들어왔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인터넷은 정보간 장벽과 계급을 공고하게 만들었고, OTT는 신작을 선보이는 무대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모든 경계와 기존 개념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미래는 예측이 아닌 의지의 영역에서 도래한다. 방향을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개념의 정립과 태도의 정리다. 가까운 미래, 고리타분한 생각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소리였다며 비웃음을 살 확률이 다분하지만, 나는 AI 영화가 영원히 영화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믿는) 영화란 과정과 태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산 중인 AI 영화는 그 과정을 생략시킨 결괏값에 가깝다.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영화와 다른 무언가다. 물론 언젠가 ‘AI 영화’라 불리는 콘텐츠가 기존의 영화를 뛰어넘는 경이로움을 선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대중문화산업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에 영화의 틀을 빌려와 모방하는 것이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영화라는 틀이 AI의 쓰임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불손한 생각도 든다. 그런 의미에서 ‘AI가 영화를 만드는’ 것과 ‘영화가 AI를 활용’하는 건 구분되어야 한다. 조지 루커스의 표현을 뒤집자면 자동차의 시대가 와도 마차를 탈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미래를 선택할 순 없지만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던 것, 익숙한 것만 하면서 고립을 자처하겠다는 건 아니다. ‘지금’을 지키기 위해선 오히려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양하게 시도해야 한다. 이번주 <씨네21> 특집은 그 고민의 결과물이다.

매주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30회 영화평론상 당선자를 소개하면서 상반기 영화 결산을 하는 게 익숙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국내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고지마 히데오 감독을 중심으로 게임과 영화의 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도 싶었다. XR과 AI로 노선을 잡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박천휴 작가와의 긴인터뷰를 K컬처 전반으로 확장하는 것도 재밌어 보인다. 고심 끝에 이번주엔 박보영 배우와의 만남을 계기로 초기작부터 <미지의 서울>까지, 배우의 A to Z를 살펴보는 특집을 마련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친숙한 모습으로 있지만 늘 미묘하게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이 반짝이는 배우에 대해 이렇게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박보영 배우의 연기처럼, 할 수 있는 게 많을 때 하지 않았던 걸 해보려 한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