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 이상에서 천명이 넘는 지원자가 면접에 지원하고, 이중 8명의 합격자가 벨기에에 모인다.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의 입사면접이냐고? 아니다. 이들은 ‘미래위원회’ 청소년 환경운동가들이다. <댓 슈거 필름> <2040> 등 다수의 환경다큐멘터리를 만든 데이먼 게모 감독은 청소년 환경운동가 8인과 함께 바이오 연료 버스에 올라탄다. 게모 감독과 8인의 청소년 환경운동가들은 미래위원회의 이름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기업이나 그린래시 기업을 후원하는 은행의 경영진을 만나 규탄하는 동시에 태초의 자연 속에 머물며 생명의 신비를 통감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정 이후 영화의 오디션에 지원한 다른 어린이 천명을 초대하며 미래위원회 활동을 무한 확장했다. 미래위원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연출한 데이먼 게모 감독, 8인의 활동가 중 한명이며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연설을 선보이는 영국의 스카이 네빌을 만나 미래위원회의 출발점과 향후 비전을 물었다.
- 벨기에의 숲에서 시작해 벨기에의 밀밭에서 끝나는 1차 여정은 어떻게 구상했나.
데이먼 게모 벨기에에 아주 작은 원시림이 보존돼 있었다. 생물다양성이 보장된 공간인 데다 식생이 다양해 나무 이야기로 여정의 물꼬를 트기 좋았다. 이후 일정은 우리가 만나고자 했던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편했다. 다만 각 기업을 향하는 길에 아이들이 최대한 자연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밀밭은 생태 재생을 이룩한 곳이라 여정을 마무리하기 제격이었다. 고정된 계획하에 움직인 것은 아니다. 인터뷰 대상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많은 기업에 섭외를 시도하며 각지를 여행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점이 다큐멘터리만의 신선함을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 청소년 활동가 8명과 유럽 각지를 여행했다. 제작비의 융통이 중요했을 텐데.
데이먼 게모 처음에는 ING 은행으로부터 단편영화를 의뢰받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이야기는 단편이 아닌 장편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여정을 단편으로 끝낼 순 없었다. 그래서 ING에 우리의 비전을 다시 발표했고, 추가 펀딩이 가능해졌다. 이후 호주와 유럽의 자선가들을 중심으로 5명의 후원자를 더 찾았다. 이들로 인해 장편으로의 확장이 가능해졌다. 처음부터 ING측에 분명히 말해둔 점이 있다. 이 프로젝트가 그린워싱(실제로 친환경 경영을 하고 있지 않으나 마치 친환경 경영 활동을 하는 것처럼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편집자)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 투자자가 편집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불편한 내용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어른들이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ING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영화에서 보듯 아이들은 네슬레나 코카콜라의 경영 방식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 긴 여정 동안 카메라가 동행한다는 사실이 출연자와 연출자 모두에게 난관이었을 것 같다.
스카이 네빌 촬영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처음이었다. 세대의 카메라와 드론, 음향 스태프도 두명이 있는 동시에 수음을 위해 마이크도 착용하다니! 행동이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걷는 자세를 의식하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우스꽝스럽게 손발을 움직였다. 친절한 크루들 덕에 금세 익숙해졌지만.
데이먼 게모 그래서 촬영 초반에 비교적 편한 일정을 몰아두었다. 아이들이 촬영에 익숙해질 때까지 최대한 롱숏으로, 멀리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또 매일 아침과 저녁, 카메라를 끈 채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기분은 어떤지, 힘든 점은 없는지 점검했다. 하루를 여는 시간, 또 마무리하는 시간을 함께 가짐으로써 우리 모두 한가족이라는 느낌을 만들고자 했다.
- 네슬레 경영진의 자가당착적 발언에 매섭게 일갈하는 네빌의 연설이 이 작품의 화룡점정이다.
스카이 네빌 쉽지 않았다. 네슬레의 고위직을 만날 기회가 언제 또 주어지겠나.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말해야 했다. 네슬레 중역의 이야기를 듣는데, 화면에 잡힌 그대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은 표정이 절로 나왔다. 무어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내 앞의 어른이 당장 내 말을 듣지 않거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말은 그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어쩌면 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몰랐다. 그래서 꼭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이먼 게모 사전에 계획된 연설이 아니었다. 그런데 스카이가 지구와 기업의 내일을 위해 용기를 낸 것이다. 스카이가 정말 자랑스럽다.
- 영화에 담기지 못해 아쉬운 비하인드가 있다면.
스카이 네빌 첫 며칠은 호텔에서 묵는 게 좋았는데, 나중에는 큰 공동주택이 훨씬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방이 20개쯤 되는 큰 집에서 함께 지냈고 다 같이 요리하며 함께 식사했다. 분위기도 아주 편안했다. 영화에 필요한 순간들은 아니었지만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데이먼 게모 이 작품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커다란 존재론적 문제를 고민하면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놀이의 중요성을 잊는다. 하지만 놀이야말로 우리를 지탱하는 지지대다. 아이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우리는 춤추고 웃고 함께 노래하면서 이 여정을 이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 현재 미래위원회의 활동을 보다 가시화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는 중이라고. 어디까지 왔나.
데이먼 게모 그사이 미래위원회는 비영리단체가 되었다. 이사진은 물론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갖춘 상태다. ‘아이들이 주도하고, 어른들이 지원하는’ 형태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금 호주에서 가장 큰 브랜딩 에이전시와 협업 중이다. 로고 디자인도 진행 중이며 아이들이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바로 지난 주말에도 다른 아이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최근엔 호주의 대표적인 문구 회사인 오피스웍스와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아이들 40명이 공동으로 디자인한 지속 가능한 필통, 배낭, 다이어리와 같은 학교 용품들을 만들 예정이다. 수익의 일부가 위원회로 돌아오면 아이들은 전세계의 자연 복원 프로젝트에 이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표결한다. 영화에 등장했던 데카트론을 포함해 몇몇 화장품 회사에서도 미팅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