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 광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애착이 있다. 연민이 아니라 동질감에 가까운 감정인데, 나 또한 지하철만 타면 ‘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란 정말 초현실적인 무대이지 않은가? 지하의 어둠과 지상의 풍경이 빠르게 교차하면서 쉴 새 없이 밤과 낮을 만들고, 역이 바뀔 때마다 새로 유입되는 승객들이 즉흥적으로 공연의 관객이 되며, 지하철에서 내릴 때마다 상실감이 생긴다. 오디션 없이 무대에 오를 유일한 기회를 놓친 것만 같아서다. 양쪽 좌석이 중앙을 바라보는 객실 구조는 분명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런웨이가 틀림없는데 거기서 워킹 한번 못해보고 내려야 한다니. 이 많은 승객이 역과 역 사이에 갇혀, 내 관객이 되어줄 텐데 독백 한번 못해보고 내려야 한다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하철 광인은 내가 놓친 기회를 잡은 비범한 존재이다. 설령 그가 “예수 믿으라!”를 불쾌하게 반복하는 천국 전도사일지라도, 특정 정치인에게 투표할 것을 강요하며 막말을 일삼는 태극기 할아버지일지라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하철 광인을 ‘악당파’와 ‘개성파’로 분류할 수 있다면, 내가 애착을 가지는 쪽은 단연 개성파로 불리는 이들일 것이다. 금빛 갑옷을 입고 말없이 승객들을 노려보는 ‘자르반 4세 할아버지’나 2PM 노래를 부르며 “쳇바퀴 돌 듯이” 텀블링하는 ‘4호선 2PM남’ 같은 유명한 무명인들이 바로 거기에 속한다.
이 개성파 광인들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진 않지만, 기이한 행색과 행위로 공공의 질서를 해친다는 합의로 탄생하고, 무단 촬영물을 통해 알려진다. 그러니까 이들은 냄새나고 더러운 폐지로 겉옷을 만들어 입어서, 남자인데 여자처럼 꾸미고 다녀서, 알 수 없는 문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큰소리로 읊다가 ‘광인’이라 불린다. 이것은 무척 부당하나, 지하철이라는 무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여기 있다!’를 선언하는 이 비범한 존재들을 달리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뭘 모르는 자들을 딱하게 여기며 광인이란 말에 애착을 느낄 뿐.
가수 미나는 2002년 한국에 등장한 또 하나의 광인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었겠지만, 내 눈에 미나가 그 수많은 광인 중 가장 광인처럼 보였던이유는 그의 정체성이 ‘월드컵 미녀’였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란 개념이 없던 그 시절, 중학생이던 내 눈에 그는 마치 땅속 벙커에서 한일 월드컵만을 기다렸다가 등장한 선전용 무기 같았다. 탱크톱으로 리폼한 붉은악마 티셔츠와 하체를 감싸듯 두른 태극기 스커트는 그 로봇에 치밀하게 고안된 디자인이나 다름없었다. 저 사람은 뭘까? 어른이면 다 번듯한 직함을 갖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그의 존재 방식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 역시 열광하면서 트집을 잡았다. ‘어떻게 신성한 국기로 옷을 만들 수 있냐’, ‘숭고한 월드컵 정신을 훼손하지 마라’…. 하지만 미나는 다른 광인들의 말에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는지 그저 열심히 응원하다 ‘월드컵 가수’ 미나로 변신했다.
미나의 1집 타이틀곡 <전화받어>는 여성 발라드 그룹 키스가 부른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편곡을 통해 미나의 섹시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강렬한 신시사이저가 이끄는 노래는 다이얼 누르는 소리와 통화 연결음과 같은 효과음이 곳곳에 악센트로 배치되어, ‘니가 먼저 만나자고 내 옆구리 쿡 찔렀지, 내가 먼저 만나자고 니 옆구리 쿡 찔렀니’ 같은 다소 노골적인 구어체 가사와 만나 바람 피운 연인과의 통화라는 테마를 풍부하게 구현했다. 미나의 이름 앞에 붙은 ‘월드컵’이라는 수식을 뗄 수 있을 만큼 실로 성공적인 데뷔곡이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광인에게서 광기 이외의 것을 잘 보려 하지 않는다. 한때 월드컵 미녀였던 그는 ‘가수’가 아닌 ‘섹시 가수’로 불렸다. 사람들은 그에게 뮤직비디오에서의 노출 수위, 축구선수와의 연애 경험, 실제 나이 같은 것들을 궁금해했다. 위문 공연 도중 관객들에게 계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도 ‘소속사가 자작극을 벌인 것 아니냐’며 그것이 바로 섹시 가수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말했다.
광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미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는 순간들을 거치며 진정한 광인으로 거듭난다. 2004년, 미나는 <돌아>라는 곡을 내며 세상에 원하는 것이 이것이냐고 묻듯 스스로 광인임을 자처한다. ‘온 세상이 도니까, 덩달아 나도 돈다’라는 내용의 노래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던 사람 코페르니쿠스’라는 웃긴 가사로 유명하지만, 한줄 한줄 뜯어보면 세상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이들의 슬픔이 절절하게 담긴 에세이 같은 곡이다. <돌아> 에서 미나는 너무나 시끄러운 세상에 가슴이 답답한 나머지 어둠 속을 거닌다. 세상이 도니까 사랑도 돌고, 불빛도 돌고,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을 보니 눈물도 핑 돈다면서 열심히 어깨와 골반을 돌리며 춤을 춘다.
우리는 별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까? 아니, 그보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까? 나는 이제 미친 것과 슬픈 것을 구분할 수 없고,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더는 공감할 수 없어 조용히 춤을 연습한다. 언젠가 나의 무대가 될 지하철 안에서 조금씩 골반을 움직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