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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인서트 숏] 마지막 원고

매주 카메라를 들고 집회에 간다. 서울의 성북구청 앞에는 목요일마다 집과 일자리를 잃고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동안 내가 이 지면에서 종종 언급했던,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던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에 살던 이들이다. 한곳에서 수십년을 일했던 사람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냥 쫓겨나야 한다. 나이 들고 아프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은 여기서 나가면 ‘벼랑 끝’일 가능성이 높다.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이 동네에서 버티던 두 여성은 잠옷 바람으로 반려동물만 껴안고 강제퇴거를 당했다. 재개발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존재들을 더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만다. 애초에 재개발의 목적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이렇게 돌아가는 세상이 당연할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면 내가 카메라를 들 일도 없었겠지. 이들의 절실함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저 개인 탓만 하기 쉬운 사회에서 당당하게 “우리 몫”을 내놓으라 항의하는 목소리로부터 내가 받는 위로도 있다. 또 내가 얻고 싶은 배움이라는 것도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이쪽에서 발생하고.

2025년 5월, 집회는 어느새 30회 차가 되었다. 20회 차까지만 해도 외부인은 카메라를 든 나뿐이었는데 조금씩 연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열심히 참가하던 몇몇이 그곳에서의 열기와 함께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고민을 안고 철거민이자 성 노동자 집회가 열리는 이곳에 연대하기 위해 합류하더니 이제는 매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 수는 점점 늘고 있다. 당사자와 연대자들이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장에 있는 건 나로서는 처음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관찰자’ 정도로 스스로를 위치 짓고 깊이 연루되는 것에는 주저했다. 카메라를 든 나도 일종의 연대인일까? 연대라는 말만 떠들었지 연대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어쨌든 현장에 있다 보면 내가 있는 자리에만 계속 버티고 서 있을 수는 없는 법. 이 과정을 잘 지켜보고 겪어보자고 다짐한다. 배움의 현장이다.

“하물며 여기 앞에 있는 가로수조차 이곳으로 이주를 해올 때는 그곳에 함께 뿌리내리고 있던 흙도 같이 가져왔을 테고 여기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흙과 양분을 듬뿍 주었을 것입니다. 한 생명이 한곳에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다가 갑자기 뿌리를 뽑혀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주대책을 보장하라. 이 말은 강제로 내쫓으면 그것은 살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 법과 정치는 생명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만든 약속일 뿐입니다. 말뿐인 약속은 집어치우고 모든 생명이 자기 생명답게 살 수 있도록 정치와 법이 잘 듣고 대책을 강구해주면 좋겠습니다.”

연대자인 (준)동물교회의 보리님 이야기를 듣고 눈앞의 가로수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살고 싶다”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매달려 있다. 반년 동안 이 나무들의 잎이 떨어지고 다시 나는 걸 알았지만 들여다본 적은 없다. 나무 가까이에 붙어 투박한 껍질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자세히 보면 오히려 낯설어진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느끼게끔 하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 하지 않았는가. 지금 집회에 울려 퍼지는 구호도 시민들 귀에 낯설게 들리게끔 하고 싶다. 다시 듣도록, 더 들어보고 싶도록. 잠시 발길을 멈추는 시민들에게 한 연대자가 미아리의 상황을 전하는 전단지를 나눠준다.

가로수를 보고 있자니 미아리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오동나무들이 떠오른다. 커다란 잎이 붉은 천막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사이로 고양이들의 작은 발자국이 지나가던 모습이 선연하다. 철거가 시작되면 그 나무들도 잘려나갈 것이다. 혹시 어딘가로 옮겨질 수도 있을까? 양분을 충분히 받고 잘 적응해서, 그래도 좀더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재개발 현장에서 뿌리 뽑힌 큰 나무들이 트럭에 실려 이동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떠오르자 이내 고속도로에서 돼지를 실은 트럭을 본 날이 떠오른다. 몇년 전 외주 제작사에 들어가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일해야 했던 때다. 그에 앞서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노동하던 시절이 떠올라 내가 또 이 굴레에 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돈을 벌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창작도 할 수가 없다. 그날은 새벽부터 지방 출장을 가고 있었다.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질 즈음, 우리 차를 앞지르는 커다란 트럭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빽빽하게 실린 돼지들.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눈앞에 드러나니 너무 낯설었다. 몹시 피로할 때 오히려 감각이 더 깨어나듯, 살아 움직이는 돼지들의 모습이 마치 흐린 렌즈를 막 닦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뒷발 하나로 쇠창살을 딛고 올라 트럭 바깥쪽으로 얼굴을 내밀던 한 돼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장면 때문에 더욱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바람을 맞으려고 일어섰다고밖에 할 수 없던 돼지의 자세. 내 기억 속에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왜 그때 눈물이 나려고 했을까.

그 시절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더는 이런 속도로 살지 못하겠다는 자각 때문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상사의 말에 피곤한 채로 따라나섰던 어느 날, 강한 햇살과 피로함에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직장인들을 피해 휘청거리며 걷다가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누운 비둘기가 보였다. 차바퀴에 여러 번 뭉개져 있던 몸. 그 순간, 다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잇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하는 물음. 닥치는 일을 허겁지겁 해치우며 살고 싶지 않다, 비둘기를 죽이는 속도로 살고 싶지는 않다, 끼니마다 식당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 일상도 싫다. 또다시 내 안에서 무언가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씨네21>에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꼭 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영화를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강한 목적을 갖는 건 경계하는 편이지만, 이 연재 글에서는 유독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졌다면 좋겠다. 물론 쓰는 과정은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의 연속이었지만. 어떤 확신 안에서도 미세하게 계속 흔들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자장들이 언젠가 나를 또 새로운 현장으로 이끌 테니까.

하나의 현장에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영화로 담을 수 없는 게 훨씬 많다. 이 사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좋은 다큐멘터리란, 무언가를 보여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게 더 많다는 여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여전히 나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