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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무기력은 무능력보다 나쁘다, <썬더볼츠*>

영화를 자주 챙겨보지 않는 사람에게 영화평론가라는 신분을 밝히면 나오는 가장 흔한 반응 중 하나가 “요즘 볼 영화 뭐가 있냐”라는 질문이다. 나는 최근에 흥미롭게 본 몇몇 작품의 제목을 주워섬기는데, 보통은 저 질문 자체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한 예의 바른 반응에 불과하기에 관련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드물게 상대가 말을 덧붙이는 때도 있지만, 대개 “요즘은 어째 볼 영화가 없다”라는 불평이다. “어째 ‘그’ 마블도 예전 같지 않다”라든지 “그래서 극장이 망하는 것”이라는 말도 흔하게 나온다.

아마도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더는 <어벤져스> 같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이건 순전히 디즈니(마블 스튜디오)를 향한 불평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마블은 14편의 영화를 냈는데,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이들이 영화 관객을 <어벤져스> 시절만큼 만족시킨 적은 없는 것 같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와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데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는 완만한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썬더볼츠*>는 <어벤져스>가 아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똑같이 뉴욕을 배경으로 히어로의 팀업 서사를 그리지만 <썬더볼츠*>는 <어벤져스>가 아니다. 영화나 영화 속 등장인물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들은 어벤져스가 없는 세상에서 힘이 빠져 지친 상태고, 다소 침울하며, 스스로를 의심한다. 심지어 MCU 인트로조차 까맣게 물들었다. 어벤져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캐릭터가 나오기는 한다. 다행히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전에 나온 MCU 영화 35편과 12편의 시리즈물을 모두 챙겨볼 필요는 없다. 이번 작품이 옐레나라는 한 인물에 집중한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의 관점에서 웬 낯선 등장인물(존 워커)이 나오긴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여기서는 옐레나처럼 불쌍한 과거를 지닌 ‘루저’라는 점이 중요할 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처럼 시리즈물을 보지 않았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어리둥절하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 관객이 우롱당하는 기분은 들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박한 각본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다. <썬더볼츠*>는 멀티버스 사가의 많은 마블 영상물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외전’으로 느껴진다. 내가 알던 영웅의 친구, 자매, 후계자 등등이 펼치는 후일담. 지나간 계절을 추켜올린 뒤, 넘겨받은 바통을 들고 열심히 뛰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는 패턴. 어떤 영화는 과거를 추억하는 일을 잘해서 괜찮았고(<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데드풀과 울버린>), 어떤 영화는 그것밖에 없어서(<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더 별로였지만, 새로운 영웅을 소개한 일부 예외(<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를 제외하면 대개 이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작품에서 옐레나와 버키는 새로운 인물과 함께 어벤져스가 사라진 세상에서 분투하지만, 엄청난 초능력이나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은 콘크리트 조각 하나 혼자 치우지 못해 낑낑거린다. 빌런 역시 외계인 군대가 아니라 한 우울한 청년에 불과하며, 하이라이트도 화려한 액션이 아닌 집단 심리치료극이다. 초록색 괴물이나 하늘을 나는 슈트도, 벼락을 뿜는 신도 없다.

그런 점에서 ‘소박한 각본’은 이 영화의 장점인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는 이유는 오직 그 작은 야심 덕분이다. 애초에 목표가 낮았으니,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섯명의 루저가 우정을 쌓는다’는 시놉시스만 보면 하이틴 코미디 <조찬 클럽>과 헷갈리는 이 영화는 앞서 말했다시피 자신이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낮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애초에 왜 그렇게 목표치가 낮았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독립·예술영화나 실험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다. “초능력 없음. 히어로 없음. 포기도 없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나 엔딩크레딧과 쿠키영상에 나오는 자조적 농담은 선제적인 자기방어로 해석된다. 당장 슈퍼솔저 한명이 열심히 슈퍼히어로로 일하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나 비초인으로서의 고뇌를 그리는,<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와 비교해볼 때 슈퍼솔저가 세명이나 있는 팀이 이런 자학을 한다는 건 자기기만에 가깝다. 그런 보신주의적 태도가 무색하게도 정작 ‘뉴 어벤져스’를 향해 “이건 나의 어벤져스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IMDb를 비롯한 여러 글로벌 영화 평점 사이트의 호의적인 대중 평가를 보면, 관객은 <썬더볼츠*>가 “절박한 어벤져스팔이”, ‘짭벤져스’(B-vengers), ‘어벤져즈’(Avengerz) 같은 자학을 하기 전부터 이미 이 영화에 큰 기대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것 자체가 MCU가 처한 슬픈 현실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결국 페이즈6가 중요하다

영화의 자기 고백. 작중 버키는 멜에게 “(<어벤져스>의 ‘뉴욕 사태’가) 너무 옛날처럼 느껴지겠군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멜은 자신이 “외계인이 쳐들어왔을 때 고등학생”이었다고 답한다. 이 문답은 관객을 향한 코멘트로 느껴진다. 이번 작품은 <어벤져스>를 잘 모르는 신규 관객보다는 아직은 <어벤져스>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관객을 향한 팬서비스다. 12년 전 <어벤져스>를 보던 학생은 성인이 됐지만 아직 앙코르를 외치며 서 있을 힘은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MCU에 필요한 것은 12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성인이나 그때도 성인이었다가 더 늙은 채 기억을 되새기는 성인이 아니라, 지금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젊은 관객층의 유입이다.

<썬더볼츠*>는 후자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에는 봐줄 만한 액션도 있고 적당한 코미디도 있지만, 캐릭터는 클리셰에 기대고 있고 스토리는 감동보다는 뭉클한 정도에 머문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깊이 있게 발전시키기보다는 적당히 공식에 맞춰 꿰어맞췄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포기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영화는 이미 과거의 유산을 뛰어넘을 생각을 포기한 듯하다. 야심이 없는 건 능력이 없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다. 최소한 이건 역대 최고 흥행 영화 시리즈로 여겨지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와 스튜디오가 택할 길은 아니다. <판타스틱4: 새로운 출발>이 여는 페이즈6에서는 부디 ‘올드보이의 귀환’보다는 더 큰 야망이 숨겨져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