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속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의 완벽한 분리에 매몰된 19세기의 의학박사다. 모두가 알듯 순수 선과 순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이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가 차라리 타임머신을 개발해 구조주의를 알았다면, 선과 악은 이분되지 않고 그 사이엔 동질성을 띠는 차이만 존재한다는 자크 데리다의 차연이론을 접했거나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양분을 지적하는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라도 들춰봤다면 불행은 막았지 싶다.
이 무의미한 가정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단점과 통한다. <지킬 앤 하이드> 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설정을 동일하게 가져와 지난 20년간 흥행 불패를 기록해왔다. 한데 이 작품이 필멸을 향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남성) 인간을 향한 개탄과 이를 3시간 내내 연기하는 배우를 향한 경탄 외에 2025년의 관객에게 어떤 새로운 감흥을 남길 수 있을까. 지킬을 사랑하는 두 여성, 상류층 영애 엠마와 하류층 쇼걸 루시의 도식이 작품의 필연적 한계와 상통한다. 두 여성 캐릭터는 지킬/하이드의 양분된 이중성을 직유하느라 고루한 성녀·창녀 콤플렉스를 답습한다. 등장 내내 사랑하는 남자를 염려하기에 급급하고 자연히 예정된 실패를 향해 뛰어드는 남성 주연의 고뇌에 희생된다(심지어 루시와 엠마는 원작 소설에 없는 인물이다). 고전을 원작으로 삼은 <지킬 앤 하이드>에 필요한 것은 윤색이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를 소모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개작될 명분이 다분하다. 현대의 관객이 고전을 누릴 권리는 창작진의 재창조가 아닌 재해석에서 비롯하고, 그 권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직접 듣기 위해 처음으로 공연장을 향하는 관객 들의 걸음마다 서려 있을 것이다.
기간 2024년 11월29일~2025년 5월18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시간 화~금 오후 7시30분, 수 오후 2시30분·7시30분, 주말 및 공휴일 오후 2시·7시, 월 공연 없음
등급 14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