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러네이 젤위거)가 돌아왔다. 전작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로 시리즈 피날레가 장식된 줄 알았건만 9년 만의 귀환이다. 마크(콜린 퍼스)와 다니엘(휴 그랜트) 사이에서의 오랜 방황을 정리하고 마크와 결혼하며 해피 엔딩을 맞은 듯했던 브리짓의 삶은 잔인하게도 후속작에 의해 리셋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남자, 마크 다아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브리짓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남편의 죽음 이후, 두 아이의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브리짓은 매일 아침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 마주치는 과학 교사 월리커(추이텔 에지오포)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가 하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20대 록스타(레오 우달)는 그 나이답게 거침없이 다가온다. 다시 한번, 두 남자 사이에 선 브리짓. 일도, 연애도, 섹스도 반 포기 상태로 살아온 브리짓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 이후의 삶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기획된 영화다. 연애와 결혼, 출산(브리짓의 경우엔 연애, 출산, 결혼)으로 이어지는 로맨스의 생애를 전부 함께했던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자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지속되는가? 50대의 브리짓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남자,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다. 남편의 부재로 인해 휘청이는 그녀를 다시 붙드는 건 생전 아버지가 남긴 말과 함께했던 기억이다. 이처럼 브리짓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두 죽음의 기능은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되어 그녀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상실과 애도로부터 시작되는 프랜차이즈의 네 번째 작품은 억지스러운 연명 대신 진정성을 확보하며, 설득력 있는 컴백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견인하는 연기자의 구력에 감탄한 적 있다면 러네이 젤위거와 브리짓 조합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일 것이다. 브리짓으로서의 공백기 동안 <주디>(2019)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여전히 푼수 같고 덜렁거리면서도 위기에 강한 TV 프로듀서로서 일과 사랑에 복귀했다. 대사와 표정, 감정과 몸짓에 기꺼이 과장을 얹으며 브리짓의 정체성과 24년을 동행해온 젤위거는 배우와 픽션 캐릭터가 서로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이상을 이번 시리즈를 통해 구현한다. 추이텔 에지오포, 에마 톰슨 같은 영국 대표 배우들과 레오 우달, 니코 파커 같은 신예 스타, 그리고 시리즈의 오랜 주인공들이 합류한 이번 작품은 단지 속편이 아닌, 영국영화계의 문화적 자산처럼 기능하는 듯 보인다. 삶의 챕터를 나누는 이정표처럼 등장하는 연애. 그리고 그 연애의 한 계절을 탁월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함께 그려낸 이번 영화는, 목적에 충실한 영화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기쁨을 선사한다. 필 굿 무비의 미덕을 고스란히 품으면서도, 그 끝에 살짝 목을 넘기는 달콤 쌉싸름한 회한이 느껴지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는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시리즈가 될 것이다.
close-up
<No Sex Please, We’re British> (1973년 발표된 앨리스테어 풋과 앤서니 매리엇의 희곡)? 영국인은 성(性) 얘기에 인색하다는 고정관념은 브리짓 존스의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다니엘(휴 그랜트)을 앞세운 친구들의 성적 농담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 백미는 오랜만의 섹스 후 헝클어진 머리로 출근한 브리짓을 향한 동료들의 돌직구. “브리짓, 어젯밤에 섹스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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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감독 소피 하이드, 2022
중년의 브리짓이 다시 성에 눈뜨면서 써내려가는 섹스-포지티브 일기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또 한편의 영국영화다. 오르가슴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60대 여성이 젊고 섹시한 남성 호스트를 만나 성적 자기 발견에 나서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에서 주인공을 연기했던 에마 톰슨이 이번엔 브리짓의 산부인과 주치의로 등장하여 그녀의 성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