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설계되었던 먼치킨랜드의 구조물은 어떻게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장면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글린다와 엘파바의 정서를 시각의 마술로 펼쳐낸 파블로 헬먼 VFX 슈퍼바이저가 직접 제작기를 들려주었다.
- 초반 글린다의 등장 장면부터 VFX의 비중이 높다. 자연스럽게 보이되 임팩트 강한 등장을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나.
첫 장면을 정하는 것만으로 수개월이 걸렸다. 관객들이 글린다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지 않나. 영화 전체에서 작더라도 정말 중요한 장면이다. 사람들에게 글린다를 어떻게 보여줄지 존 추 감독과 오랫동안 논의했다. 명민한 스토리텔러로서 그는 글린다가 이야기에 천천히 스며들길 바랐다. 그래서 글린다가 멀리서부터 조금씩 먼치킨(<오즈의 마법사> 속 주민들을 일컫는 말)에게 다가오는 방식을 택했다. 인물을 처음 등장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만약 임팩트를 우선했다면 카메라를 켜고 인물을 ‘짜잔!’ 하고 보여줄 수도 있지만 존 추 감독은 <위키드>의 전반적인 무게와 글린다의 균형을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천천히 비눗방울을 타고 다가오는 장면이 완성됐다. 글린다가 방울을 톡 터뜨리면 밖으로 나오는 식으로. 그렇다고 임팩트가 덜하지도 않다. 오히려 글린다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관객들이 글린다를 올려다보는 구도도 먼치킨과 같은 시선으로 두었다. 이 순간 관객은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먼치킨이 된다. 모두가 <위키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빛을 정말 많이 썼다. 특히 백라이트. 분홍색과 보라색의 빛들. 어떤 방식으로 캐릭터를 드러내는지는 작품을 다루는 영화의 기본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을 기했다.
- <위키드> 1장에서는 글린다와 엘파바, 각기 다른 성격의 두 친구가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물별로 VFX 효과나 분위기 등을 어떻게 다르게 조성하려 했나.
많은 영화가 그렇지만 <위키드>는 특히 시각효과가 다른 장치들과 뒤섞여 작업되어야 했다. 앨리스 브룩스 촬영감독, 네이선 크롤리 미술감독, 갈 로이터 조명감독과 함께 면밀하게 고민했다. VFX는 이들이 계획하고 구체화해온 것을 조금 더 연장하는 일에 가깝다. 스태프들이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면 나는 그 끄트머리를 마무리해서 이야기를 빚어낸다. 이번 VFX에서는 두 친구의 서로 다른 개성과 배경, 성향 등을 색깔로 많이 대비하여 나타냈다. 특히 색 조합과 색온도를 신경 썼다. 따뜻하고 명랑발랄한 계열의 색깔을 글린다에게, 차갑고 냉소적이지만 이성적인 색깔을 엘파바에게 주려 했다. 영화 속에는 몹시 환상적이고 팬시한 소품과 구조물이 많이 보이지만 그게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위키드>의 세계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최소한 일어날 거라 의심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작품에서 VFX가 짚어내야 하는 목표는 거기에 있었다.
- <위키드> 파트1에서 가장 기대감이 큰 장면은 단연 뮤지컬 1막의 엔딩이기도 한 <Defying Gravity>다. 하늘에서 추락하다 다시 상승하는 엘파바의 장면에서 빠른 속도감을 더하면서도 VFX가 이질적이지 않게 드러나야 하고 동시에 해방감을 안겨줘야 하는 미션이 있다.
오, 마이 갓! <Defying Gravity>는 신을 붙여두기가 정말 어려웠던 시퀀스 중 하나다. (웃음) 실제 시나리오를 보면 노래가 정확히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노래가 시각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시퀀스를 완전히 새롭게 개발해야 했다. 존 추 감독을 중심으로 모든 스태프가 에메랄드시티 타워 모형이 있는 테이블에 둥글게 모여서 시퀀스에 대한 계획을 촘촘히 짰다. 아주 작은 막대기를 든 엘파바 모형도 있었다. 이제 그걸 들고 날아가야 하니까. 일종의 인형극이었다. <Defying Gravity>는 신시아 이리보의 복합적인 연기가 극에 달하는 넘버이기도 하다.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제약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되는 순간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각 팀이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할지 명확하게 점검했다. 스턴트 연기자 또한 어디서 줄을 두고 어떤 신체 연기를 펼쳐야 하는지 계산했다. VFX에도 미션이 떨어졌다. 이 장면의 고양감을 높이기 위해 진짜 존재하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진짜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으로. 세상에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에 보이도록. 실제로 타워에서 떨어지던 엘파바가 자신의 힘으로 올라서지 않나. 그 장면에서 압도적인 현실성을 잘 드러내야 했다.
- 에메랄드시티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난 엘파바는 고서적을 읽고 마법을 부린다. 원숭이에게 날개가 돋아나는 충격과 공포심을 높이기 위해 VFX적으로 어떤 조정을 했나.
우선 원작을 보며 변신 순서를 살펴봤다. 다만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끔찍하게 변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변형 또한 영화 속에서 또 다른 자극과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이번 영화에서는 마법사와 함께 나오는 반면 두 번째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욕망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존 추 감독에게 원숭이들에게 더할 색상 범위, 날개 모양 등을 제안했다.
- 쉬즈 학교 곳곳의 공간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위키드>의 큰 재미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VFX 기술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쉬즈 학교의 부분이 있다면.
쉬즈 학교는 세트장의 30피트(약 9.1m) 이상으로는 모두 VFX로 구축했다. 여기서도 역시나 타 부서와의 협업이 중요했다. 바로 미술팀. 먼저 네이선 크롤리 미술감독에게 구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이 넓은 공간에서 실제 만들어지지 않은 구간이 어떻게 채워지길 바라는지 함께 의논했다. 실물 세트장과 디지털로 제작된 장면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포스트프로덕션 단계에서 스펙에 맞게 VFX로 설계했다. 물론 완전히 VFX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먼저 중간에 등장하는 선박은 돛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VFX로 만든 것이다. 학교 입구 상단에 있는 아치형 디자인이나 맑은 하늘도 모두 시각효과와 특수효과로 완성했다. 크게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다져주는 요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