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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관능이 넘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사실 별것 아닌 것에 반하는, 가령 삐져나온 머리칼이라든지 멀쩡한 도보에서 발을 헛딛는 때나 이상한 웃음소리 혹은 사람들 앞에서 졸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해내거나 노래하는 순간. <치코와 리타>에서는 <Besame Mucho>가 흐르는 때다. 그런데 그 사람과 첫 섹스를 예감하는 순간은 다르다. 사랑에 빠지는 게 우연이라면 첫 섹스는 필연이다. 거기엔 서로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갈망이 있다. 술자리에서든 댄스홀에서든 관능은 찾아오고 무엇보다 그건 둘만 아는 순간, 요컨대 마법이다. 그래서 <치코와 리타>의 강렬한 순간은 <Besame Mucho>가 아니라 <Cellia>가 흐르는 때다.

텅 빈 바에서 치코가 피아노를, 바텐더가 술병을 두드리는 중에 리타가 춤을 추는 이 장면은 둘의 첫밤을 위한 전희다. 관능적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긴 뮤직비디오 같은 고전적 신파를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유도 납득하게 된다. 리타 같은 몸과 동선을 재현할 배우도 없었을 것이다(물론 반세기 전 쿠바와 뉴욕도). “베보를 위해”란 말로 헌정된 베보 발데스가 사운드트랙을 전담했지만 이 곡만은 롤란도 루나가 연주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후기 멤버이자 쿠바의 대연주자로 칭송받는 피아니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