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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린젤] 무용은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바우쉬의 철학처럼

피나 바우쉬를 단순히 ‘현대무용의 대명사’라는 수식어로 부르는 것은 실례다. 정확한 안무, 신체의 움직임, 움직임으로부터 나오는 아름다움을 중시했던 기존의 무용과 달리 피나 바우쉬는 항상 ‘과연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를 연구했고, ‘움직임에 내재된 감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나 바우쉬의 전성기 때부터 세상을 뜬 2009년까지, 오랫동안 그의 옆에서 함께한 친구가 있다. 안네 린젤이다. 독일의 문화 전문기자로, 생전 피나 바우쉬와 그의 작품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책을 써왔다. 안네 린젤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다큐멘터리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와 거장 피나 바우쉬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들어봤다.

-피나 바우쉬를 처음 만난 건 언젠가. 그때 첫인상이 기억나나. =1973년 피나 바우쉬가 독일 부퍼탈발레단 단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났다. 첫인상은 다소 소극적이었지만 매우 친절했다. 큰 눈에 섬세한 얼굴이 빛나더라. 첫눈에 반했다고나 할까. 이후 기자로서 늘 그와 함께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바우쉬의 대표작인 <콘탁트호프>는 남성과 여성의 사랑을 신체 움직임을 통해 묘사한 이야기로, 1978년에 초연했던 작품이다. 당시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우리 발레리나들이 60살이 넘어서 나이 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성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이 작품을 다시 해보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는지, 2000년 바우쉬는 65살 이상의 아마추어 무용수들과 함께 <콘탁트호프>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그에게 새로운 실험이었는데, 이 작품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점에서 바우쉬는 청소년들과 작업하려고 했다. ‘삶의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선 아이들이 이 작품을 표현하면 어떤 느낌이 나올지’를 그는 항상 궁금해했다.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가르치고 연습하는 데 도움을 준 두명의 여선생님은 누군가. =오랫동안 바우쉬의 무용팀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발레리나들이다. 특히 조 앤 엔디콧은 <콘탁트호프> 초연 때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이 아이들에게 무용에 대해 제대로 된 표현과 해석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독일의 한 영화평론가가 두 사람에 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이들이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재 독일에서 청소년 성범죄, 폭력 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들은 청소년과의 관계를 어떻게 교육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무용을 배우는 아이들’을 그리지 않는다. 무용을 통해 아이들과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무용에 대한 바우쉬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이처럼 그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언어에 내재된 감성에 더 흥미를 보였다. 이는 바우쉬가 창안한 무용극 예술이 기존의 전통 발레보다 새로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피나 바우쉬와 오랫동안 함께했다. 혹시 그에 관해 기억나는 인상적인 일화가 있나. =피나 바우쉬가 에센에서 발레를 공부하던 시절, 장학금을 타기 위해 한 재단에서 솔로로 춤을 추게 됐다. 그는 무대에 올라가서 준비를 마치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연주하기로 한 약속을 깜빡 잊은 피아노 반주자가 한 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 반주자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과 당시 자리에 있었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피아노 반주자가 오기까지 한 시간 이상 피나 바우쉬는 준비자세로 꼿꼿하게 무대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대단한 에너지와 집중력,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야말로 그가 세계적인 무용수와 무용안무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피나 바우쉬를 그린 당신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고 들었다. =피나 바우쉬의 파트너였던, 지금은 은퇴한 얀 미나릭을 그린 <어느 위대한 무용가에 대하여>(1987), 바우쉬의 인도 공연을 담은 다큐멘터리 <인도의 카네이션>(1994), 바우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독일의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피나 바우쉬>(2006) 등 생전 바우쉬에 관한 여러 영화들을 만들었다. 특히 <피나 바우쉬>는 생전 바우쉬가 매우 좋아했던 긴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차기작이 궁금하다. 그리고 신년 목표는 뭔가. =현재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울리 바이스라는 사진작가가 찍은 피나 바우쉬의 마지막 사진들도 함께 싣는다. 바우쉬 개인의 삶에 대한 책을 하나 쓰려는 계획도 있다. 부퍼탈 지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인 토니 크랙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과 관련한 작업을 해볼까 생각 중이다.

사진제공 안네 린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