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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아저씨는 떠나지 않았어요

일단, 사람이 문제다. “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아내를 잃고 요양원에 들어온 노인은 치매 걸린 첫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동창과 한판 대결을 펼친다. 박인환 시를 누가 잘 기억하느냐가 관전 포인트. 또 혜성 충돌로 지구 멸망이 코앞에 다가왔건만 아파트에선 이웃끼리 층간 소음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이웃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부둥켜안고 울어도 끝끝내 소음문제는 안 끝난다. 참, 죽는 날까지 징글징글하게 ‘인간적’인 인간이여. 박민규 작가가 5년 만에 들고 온 단편집 <더블> 속 군상이다.

<더블>은 외관부터 근사하다. 열여덟편의 단편들을 LP 시절의 더블앨범처럼 두권 세트로 만들고 마스크맨 사진과 그림을 표지로 썼다. 누구에게도 안 꿀릴 입담도,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전개도, ‘서민’적인 애환도 여전하다. 제목부터 빵 터지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의 차 팔러 지구 밖으로 달려가는 세일즈맨, <굿바이, 제플린>의 마트 선전 하려고 수입한 대형 풍선이 바람에 날아가는 바람에 그거 잡으러 길 떠난 청년. 이젠 익숙한 박민규식 인물이다.

그런데, 웃긴데 속이 갑갑하다. 한때 잘나가던 무림의 고수들은 이젠 “싸움 잘해봐야 삼성한테 이길 수 있어요?” 같은 뼈아픈 질문을 받는다. 자본주의가 뭐든 먹어치워 도망갈 곳이 없는 시대라 그렇다. 작가는 본격 장르 단편들에서 누구도 ‘바깥’으로 갈 수 없는 세계를 그린다. 총 든 사이코 루디를 만난 금융회사 부사장은 피 튀기는 로드무비를 찍으며 점차 루디의 세계에 빨려들고, 심해 잠수 실험 지원자들은 지구 밖이 아니라 밑으로 가려고 죽음을 각오한다. 빌어먹을 “돈이 최곱니다” 세상, 징글맞은 인간들은 어디 못 가고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 쭈욱. 기분 참 “호올스”하다. 위안이라면, 작가가 여전히 우리를 위로하고 싶어 머리 굴리고 마음 쓴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사실. 여차하면 균형 잃고 넘어지기 쉬운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가 제자리를 지켜주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