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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피플] 공포의 여러 얼굴

한효석, <감추어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

며칠 전, TV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뉴스를 틀어놓은 30분 내내 사고·사기·살인·투쟁 같은 암울한 뉴스만 들렸다. 매일의 뉴스가 그러하니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대체 어쩌다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나’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게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더 많이 나쁜 사람과 더 많이 잘못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어진다고 지금의 불안과 공포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서다. 하긴 <유동하는 공포>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도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라고 했다. 어차피 공포의 핵심을 알 수 없는 거라면 공포의 단면적인 움직임을 주시하며 예측 가능한 만큼 몸을 움츠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이것조차 매우 불안한 대처방법이긴 하지만.

공포가 시각적으로 극대화된 존재가 바로 괴물이다. 어떤 존재를 괴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시대 공포의 단면이 추측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8월30일까지 열리는 <괴물 시대: Dissonant Visions전>은 동시대 예술가 21명이 생각하고 느끼는 괴물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전시다. 작가들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공포의 대상과 표현 방식이 가지가지다. 신학철 작가는 총 모양의 팔에 공장 파이프 모양의 장기, 육감적인 입술 모양의 얼굴을 가진 괴물에 <한국 근대사>라는 제목을 달았다. 데비한 작가의 괴물은 미인, 성적 이미지와 종종 묘하게 결합하곤 하는 스포츠의 특성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비너스의 몸매에 축구공 무늬를 새겨넣은 <스포츠 비너스>다. 힘줄과 근육이 드러난 인간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효석 작가의 <감추어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하여 10>는 호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공포와 불안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작품들인 만큼 온갖 괴물들을 전전하며 걷는 기분이 편치만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불협화음적(dissonant)인 시선을 감수해야 할 이유도 있는 거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듯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바로 보는 것, 그 뿌리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