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1876,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 Paris/The Bridgeman Art Library
인상주의 화가들의 몸속에는 멜랑콜리란 유전자가 공통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듯했다. 에드가르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는 활짝 웃고 있어도 슬펐다. 여성의 나체를 전시하듯 그려놓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은 조금 더 신랄했다. 그럼 장 클로드 모네는? 그는 죽은 아내의 몸에서도 변화하는 빛을 찾은 사람 아닌가. 또 다른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은 위와 같은 멜랑콜리 유전자 가설을 단숨에 무마시킨다. 곱게 차려입은 부인은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신사의 어깨에 기대고, 풍만한 여인들은 더없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목욕물을 길어올린다. 행복을 머금은 르누아르의 인물들은 보는 이들의 기분까지 화사하게 만든다. “그림은 유쾌하고 즐겁고 예쁜 것이어야 한다”는 르누아르의 신조는 그렇게 그의 그림에 반영되어 있다.
르누아르의 국내 최초 회고전인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전>이 9월1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르누아르의 유화 및 종이작품 118점을 전시하는 대형 기획전이다. 인상주의 작품이 많기로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등의 소장품을 공개하는 이번 전시에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르누아르의 대표작 <시골 무도회>(1883)와 <그네>(1876),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 등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르누아르가 살아생전 5천여점이 넘는 유화를 그린 다작(多作)의 작가였던 만큼 풍경화부터 인물화까지 소재와 주제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지만, 특히 인물화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그의 인물화는 인상주의 화단에서 르누아르의 독자성을 입증하는 증거다.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의 움직임에 주목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제1순위 목적으로 두었다. 하지만 자연보다는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르누아르는 지상의 행복한 순간- 아름다운 여인, 파티, 책 읽는 소녀들- 을 즐겨 그렸다. 사람을 중심으로 그리다보니 르누아르만의 사실적이고 고전적인 화풍이 탄생했다. 이 독창성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 바로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여인의 몸과 넘실거리는 물가가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이 작품들은 인상주의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했던 한 작가의 노력을 반영한다. 한편 주제별로 8부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동료 화가 알베르 앙드레가 그린 르누아르 본인의 모습도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