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예산과 배급라인, 영화 아이디어에 대해 발전적 토론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감독들, 그리고 창작의 완전한 주도권. 영화감독에게 이보다 더 황홀한 백일몽이 있을까?
네명의 감독이 그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 벤처영화사 창립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지난 10월4일 <버라이어티>가 보도했다.
생산적 동거를 추진하고 있는 감독들은 <트래픽>의 스티븐 소더버그와 <쎄븐>의 데이비드 핀처, <존 말코비치되기>의 스파이크 존즈와 <일렉션>의 알렉산더 페인. <버라이어티>는 네명의 감독이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구가하며 첫 5년간 각자 세편의 영화를 연출한다는 계약을 맺었으며 5년에서 7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작품의 판권을 직접 소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신생 영화사는 이들이 만들 영화의 프로덕션과 배급 업무를 관리하게 된다. 감독들이 연출할 영화의 등급, 예산, 러닝타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으며 전문 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할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더버그, 핀처, 페인, 존즈는 경력의 길이는 각기 다르지만 미국 영화산업의 ‘건강한 전위’로 묶을 수 있는 감독들. 작가적 개성과 대중적 호소력이 균형을 이룬 ‘절충주의적’ 수작을 만들어온 데다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덕목까지 갖춘 이들의 새 영화사에 기존 스튜디오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노릇.
그러나 현재 새 영화사의 동반자로 유력시되는 스튜디오는 미니 메이저 USA필름. 계약이 성사되면 USA필름은 새 영화사가 제작할 영화들의 제작비 조달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반대급부로 미국시장 배급권을 소유하게 된다. USA필름은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오스카 감독상을 안긴 <트래픽>의 제작과 배급, 마케팅 과정에서 보여준 업무 방식이 호감을 얻은 데다가, 메이저 스튜디오의 경우와 달리 해외 배급권까지 한꺼번에 욕심내거나 제작 과정에 간섭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점수를 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소더버그 등 감독 개개인과 비독점적인 계약을 맺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새 영화사 제작 작품의 해외 배급권자로 가담할 전망이다.
네 감독의 회사에 다른 감독이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5의 멤버로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로 오스카를 휩쓸고 최근 톰 행크스 주연의 신작 <지옥으로 가는 길> 촬영을 마친 샘 멘데스. 그러나 샘 멘데스는 활동의 가장 큰 비중을 자신의 극단 돈마르 웨어하우스에 할애하고 있는 탓에, ‘감독들의 영화사’가 갖는 최대 장점인 아이디어 교환과 브레인스토밍에 기여하지 못할 것을 걱정해 제의를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스티븐 소더버그만 해도 조지 클루니와 운영하는 섹션 에잇 프로덕션이 <오션스 일레븐> 이후 워너브러더스와 계약(first-look deal)을 3년 연장해놓은 상태. 과거에 사인한 계약에 의해 공동회사 외부에서 진행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은 이미 의기투합한 감독들에게도 짐이 될 전망이다.
할리우드 역사상 연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연합해 영화사를 세운 감독으로는 1960년대 말 파라마운트 지붕 밑에 회사를 차렸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피터 보그다노비치, 윌리엄 프리드킨의 예가 있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