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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인형과 직접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막의 모래가 꼬물꼬물 움직이는가 싶더니, 사람의 얼굴에 팔이 달린 형상의 캐릭터가 튀어나온다. 모래를 조몰락거리며 뱀, 불가사리 등등을 빚어내는 주인공. 익살맞은 캐릭터들이 생명을 얻고 함께 모래성을 쌓는 아기자기한 움직임에, 그 대부분이 모래로 지은 세상임을 깜박 잊을 지경이다. 1978년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차지한 <모래성>(1977)의 감독 코 회드먼은 인형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온 대표적인 작가. 네덜란드 출신으로, 캐나다로 이주한 60년대 중반부터 예술과 실험애니메이션의 산실로 이름난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C)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눈 속에서 발견한 인형을 소중히 돌보는 꼬마 곰 루도빅을 그린 <루도빅-눈 선물>(1998)의 익숙한 봉제인형에서부터 종이, 모래, 나무 등 일상적인 재료로 빚어낸 다양한 형상들까지, 회드먼의 손길에서 생생한 숨결을 얻은 애니메이션의 소우주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회드먼은 지난 11월8일 폐막한 제8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의 심사위원을 맡아 96년 SICAF 방문 이후 두 번째로 내한했다. PISAF에서,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이 CGV부천에 마련한 자리에서 두 차례 강연을 갖고 ‘인형극의 마술’을 수줍게 얘기하던 인형 세상의 조물주와의 일담.

당신에게 인형극의 마술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디자인, 꼴, 형태에 대한 매혹이랄까. 인형극의 표현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돌 하나, 접은 종이, 뭐든 인형으로 개발할 수 있으니까. 또 인형극도 결국 스토리텔링에 관한 것이라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디지털 작업이 대세인 요즘, 한 프레임씩 인형을 움직이며 찍는 전통적인 작업을 고집할 수 있는 원동력은. 그게 내가 배운 것이고, 내가 아는 것이니까. 컴퓨터애니메이션도 배웠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역시 어떤 실체의 촉감이었다. 창을 여러 개 열고 마우스를 누르는, 촉감이 부재한 컴퓨터 작업엔 좀 좌절했다. (웃음) 스튜디오에서 실체와 접촉하는, 인형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달까. 유년과 동심의 세계를 세심하게 담아낸 작품들이 많은데. 내 유년기를 돌아보게 하니까. 아이처럼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이는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늘 흥미진진하다. 최근 40년 가까이 몸담았던 NFBC를 나왔다고 들었다. 작가들을 직원처럼 고용해 급여를 주면서 지원하던 NFBC의 정책이 예산문제 때문에 프로젝트별로 작가를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아직도 NFBC의 작업 공간을 활용하지만, 전처럼 소속된 건 아니다. NFBC에서 독립한 지금, 앞으로의 계획은. 내 첫 장편이 될 <Quest for Winter>(가제)를 진행 중이다. 지구 온난화와 남극의 위기를 다루는데, 눈과 얼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마존의 동물들이 떠돌이새를 통해 남극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루도빅>의 TV시리즈도 추진 중이고, 아주 흥미진진한 시기랄까. 아내와 딸, 두 손자와 손녀를 부양하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