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국적이 절대적 의미를 갖는 건 아니지만 나라마다 잘하는 장르가 있다. 모든 장르에서 할리우드가 독보적인 입지에 서 있다 해도 조금 더 세분해 들어가면 특별히 눈에 띄는 분야가 보인다. 예를 들어 70~80년대 이탈리아에선 ‘지알로’라 불리는 공포스릴러가 특산물이었다. 히치콕 영화를 자극적 색채감각으로 덧칠한 듯한 이 영화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탈리아를 가장 독특한 공포영화를 만드는 나라로 인식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영국에선 위기에 처한 탄광촌 또는 실업으로 허덕이는 소도시를 배경으로 서민정서에 호소하는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진다.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에 빚지고 있는 이 장르는 90년대 이후 <풀 몬티> <빌리 엘리어트> <브래스드 오프> 등을 통해 다시 한번 각광받았다. 홍콩에선 홍콩누아르라는 변종장르가 대표 격이다. 이 장르는 홍콩영화의 침체와 더불어 힘을 잃은 듯 보였으나 <무간도> 시리즈를 통해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그 나라의 문화적 토양에서 나고 자란 이런 장르는 공포영화나 범죄영화라는 큰 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국적을 장르명 앞에 붙이게 된다.
굳건한 스튜디오 시스템 아래 성장했던 일본영화에도 이런 특화된 장르가 많다. 멜로드라마, 사무라이영화, 야쿠자영화, 서민코미디, 로망포르노 등 일본은 할리우드 못지않은 장르영화 제조공장이었다. 그러나 쇼치쿠의 멜로드라마와 서민코미디, 도호의 사무라이영화와 괴수영화, 도에이의 야쿠자영화, 닛카쓰의 로망포르노 등 스튜디오 중심의 장르영화는 스튜디오 제작시스템이 붕괴한 80년대 이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일본 인디영화들. 개성있는 감독들을 대거 배출해낸 일본 인디영화는 그렇다고 상업적 가능성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장르 문법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스타를 만들어낼 줄 아는 일본 인디영화는 90년대부터 산업적 토대를 다시 만들어야 했던 한국영화에 좋은 자극을 주는 존재였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인디영화의 유서 깊은 두 가지 뛰어난 발명품은 여전히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른다. 그 두 가지란 ‘사다코’라 불리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과 꽃미남, 꽃미녀로 이뤄진 청춘스타들이다. J호러와 일본 청춘영화라는 장르명으로 바꿔 불러도 좋은 이 두 가지 발명품은 인디영화가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특히 최근 관심이 가는 것은 일본의 청춘스타들이다(J호러는 일본보다 많은 사다코를 양산하는 한국 호러로 번안됐지만 청춘영화는 그렇지 않다). 청춘물이 대중적 인기를 끄는 토양에서 자란 젊은 배우들이 보여주는 폭넓은 작품 선택의 스펙트럼은 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의 제작자와 감독에겐 무척 부러운 일이다.
이번주 특집기사는 일본 인디영화의 힘을 되짚어보자는 제안이다. 그러나 일본 인디영화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아니다. 한국에서 그들의 영화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가 중심이다. 한쪽에 치우친 입장일 수 있지만 거꾸로 그래서 볼 수 있는 어떤 양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본침몰>의 흥행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 영화계가 그동안 한국의 블록버스터를 보며 부러움을 느껴왔다는 김영희 도쿄 통신원의 현지보고와 주류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다양성을 접하는 통로로서 일본 인디영화를 대한다는 한국 관객의 반응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또는 <메종 드 히미코> <스윙걸즈> <박치기!> <린다 린다 린다> 등 4편에서 공통점을 찾아낸 정한석 기자의 분석은 외부자의 시선이 갖는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더불어 정재혁 기자가 일별한 지금 일본 청춘스타의 계보도 흥미로울 것이다. 자, 일본 젊은 영화의 힘을 여러 측면에서 한번 느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