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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라,거울아!<거울 속으로> 촬영현장

다른 영화라면 몰라도 <거울 속으로>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에서 거울을 깨뜨리는 장면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대목 아니겠는가? 하지만 액션을 목격하기에 앞서 양수리종합촬영소 제3스튜디오에 발을 들여놓은 방문객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세트였다. 문턱에 서서 바라본 아홉개의 하얀 상품 부스와 벽거울이 도열한 백화점 이벤트홀 세트는 마치 ‘프레임’의 숲처럼 보였다. 재개장을 앞둔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연쇄살인의 플롯을, 마그리트나 에셔 같은 화가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착시 현상의 매혹과 결합한다는 것이 <거울 속으로>(제작 키플러스픽처스 투자·배급 시네마서비스)의 야심이다.

현재 70%를 찍어놓고 6월20일 개봉을 계획하고 있는 <거울 속으로>의 촬영은 속도가 빠른 편. 신 전체를 커버하는 마스터 숏을 찍은 다음, 쪼개어 들어가는 부분 숏을 찍어서 필름보다 시간을 아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에 현장을 처음 공개한 3월21일의 페이스는 평소만 못했다. 불미스런 사고로 경찰을 퇴직한 백화점 보안실장 우영민(유지태)이 사건의 단서를 쥔 이지현(김혜나)과 살인 미스터리의 심장부인 이벤트 홀에 들어서는 장면. 동선과 카메라가 어긋나기라도 하는지 쉽사리 오케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모니터가 요란한 소음을 내 가전사 A/S요원까지 현장에 합류하고 말았다. 마지막 말썽꾼은 다름 아닌 거울. 실리콘으로 너무 단단히 부착된 탓에 골프채에 맞아 깨지는 모양새가 시시하다. “아이언말고 1번 우드를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급기야 이지수 동시녹음 기사가 전문적인 조언에 나선다.

“크랭크인 전에 예상 못했던 어려움은 뭐였나요?” 웬만해선 거울처럼 고요한 표정을 흩뜨리지 않는 김성호 감독은 군중신을 꼽았다. “텅 빈 방에 혼자 있는 장면이 무섭게 보이긴 쉽지만 대낮에 많은 사람이 웅성대는 장면에서 공포를 연출하긴 어려워요.” 삼인삼색 주연배우의 하모니도 신인감독의 숙제. 자기 안에서 캐릭터를 끌어내는 유지태, 캐릭터 안으로 몸을 던지는 김명민, 연극적 선명함이 두드러지는 김혜나가 나란히 설 때 조율은 순전히 감독의 몫이 된다. 취재진보다 몇배 환영받은 이날의 손님은 원일 음악감독. 촬영 당시 배우의 감정과 처한 공간을 중요한 모티브로 여기는 그는 이내 김혜나를 붙들고 캐묻기 시작한다. “아까 알람소리 들리는 신에서 상상한 멜로디가 뭐예요?” 이형주 미술감독도 가세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우리 영화 이미지의 운율을 멜로디에 반영하면 어떨까?” 영화가 집단예술임을 증명하는 풍경에 기자가 새삼 감동하는 사이, 마침내 거울은 감독이 원했던 대로 장렬하게 부서져내렸다. 사진 이혜정·글 김혜리

♣ 영화 전체를 뒤덮은 거울을 피하고 활용하며 다양한 트릭 촬영의 난제를 같이 짊어진 정한철 촬영감독과 염효상 조명기사는 각별히 밀접한 2인3각의 단짝이다. ♣ 부산영화제 PPP NDIF상을 탄 자작 시나리오로 데뷔하는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 세밀한 콘티를 갖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 이지현의 목걸이 시계는, 죽은 언니가 전화를 걸던 9시가 되자 노래하기 시작한다. ♣ “거울이야….” 사건의 핵심을 깨달은 우영민은 골프채를 집어든다. ♣ 사각의 구조물과 거울이 도열한 이벤트홀은 <거울 속으로>의 5개 세트 중 영화 전체의 시각적 컨셉과 가장 긴밀한 공간이다.

유지태 인터뷰"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래서 영화한다. "

<봄날은 간다>가 지지난해 가을이었으니 햇수로 2년 만이다. 그동안 유지태는 <내츄럴시티>를 (카메라 앞에서) 찍었고,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을 (카메라 뒤)에서 찍었으며, 일본에 머무르며 4개월 동안 말을 배웠다. <거울 속으로>의 그는 거울의 계교에 걸려 불행해진 전직 형사 우영민이 되어 연쇄살인의 비밀을 캔다.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유지태는 여전히 오래 생각하고 천천히 말하는 배우였다.

연출한 단편 <자전거 소년>은 어떤 영화였나.

첫사랑에 빠진 꼬마가 스스로 제일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자전거 타는 모습을 소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벌이는 해프닝을 그렸다. 연기를 아예 모르는 친구들에게서 얼마나 연기를 뽑아낼 수 있을까 시도했다. 상업영화를 찍으며 느낀 것들을 시험한 거다.

<거울 속으로>는 플롯이 정교하고 시각적 설계가 치밀한 영화다. 따라서 관객의 감정을 책임지는 배우의 부담이 더욱 무거울 것 같다.

그 점이 가장 큰 걱정이다. 배우로서 내게 <거울 속으로>는 강력한 스토리와 시각적 요소 틈새에서 어떻게 연기를 살릴 것인지 시험하는 도전이 될 것 같다.

시나리오에서 우영민은 거칠고 지친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데.

외모를 변화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언젠가 큰 폭의 변화를 하겠지만 <거울 속으로>는 아니다. 물론 영화마다 느낌을 달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독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일하면서 공부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김성호 감독에게선 무엇을 보나.

김성호 감독은 현실적이고 필요한 때 냉정하다. 신인감독이지만 감정과 일을 혼동하지 않는 리더다. 호러영화의 연기 속에서 리얼리티를 잡아내는 문제로 고민이 많아, 얼마 전 다이얼로그에 대해 의논했는데 “대사는 마지막 도구다. 그것도 직설이 아니라 돌려서 써야 한다”는 생각을 들려주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비슷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다시 비슷한 영화들만 투자를 유치하는 요즘 영화계 현실에 대해 고민이 없지 않겠다.

특정 장르의 엇비슷한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지만 사양해왔다. 일본만 해도 신주쿠 한복판에서 보도 듣도 못한 다큐멘터리 같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영화를 상영하더라. 그래서 디지털영화, 대안적 배급 가능성에 관심이 간다. 일본어를 배운 것도 그런 상상과 무관하지 않다.

대개 현실이 재미없을 때 대안을 꿈꾸지 않나.

생각만 바꾸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지금은 일이 있으니 곤궁하지 않고 나중에 일이 없을 때면 학교를 다니면서 학비만큼 기자재를 이용해 영화를 찍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게 살고 싶고 그를 위해 내가 지금까지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