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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위안 아이들> <고향의 노래> <친애하는 당신> <뻐꾸기>

중국, 2001년, 85분

감독 린리, 오후8시30분 대영5

비참한 환경 속에 놓인 아이들을 보다 못한 감독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를 기막히게 하지만, 이내 이 기막힌 현실을 편안하게 앉아서 바라보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뜨거운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중국의 뒷골목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애초 이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 기착지인 청도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그녀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12살짜리 소년 후지엔과 쳉보, 15살짜리 소녀 쳉리는 한 역 앞에서 종일을 지새우는 거지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길 가는 여성의 귀거리를 그야말로 ‘뜯어’내는 날치기였다. 그녀를 더욱 충격으로 몰고 간 것은 그들이 모두 심각한 마약중독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그 가냘픈 팔뚝에 헤로인 주사를 꽂아대며 중독기를 달랬고, 도둑질은 이 엄청난 비용을 조달하고 위한 것이었다. 훔친 귀걸이로는 그들이 하룻동안 일용할 헤로인도 댈 수 없는데 말이다. 분노한 감독은 이들의 삶을 이렇게 몰고 간 것이 어페이라는 사조직을 통해 푼돈을 긁어모으는 부패한 경찰과 청소년 마약 문제에 무관심한 당국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전 사회적이라 할만큼 조직적인 행각 탓에 이 절망의 수레바퀴 속으로부터 아이들을 탈출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란 사실 또한 알게 된다.

비참한 환경 속에 놓인 아이들을 보다 못한 감독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카메라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수렁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시작된다. 미국에 유학 중인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갈 방도를 모색하지만, 여의치 않다. 아이들은 감독과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도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마약에 허기져 있고, 영악한 삶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허사로 끝나고 감독은 무력감과 분노에 젖는다.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를 기막히게 하지만, 이내 이 기막힌 현실을 편안하게 앉아서 바라보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뜨거운 다큐멘터리.

글/문석

<고향의 노래> A Marooned in Iraq

이란, 2002년, 103분

감독 바흐만 고바디, 오후5시 메가박스5

<고향의 노래>는 분노나 증오를 설파하지 않는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에 배척받으며, 폭격과 학살을 피해 타의에 의한 유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쿠르드인들의 운명을 아련한 멜로디에 담아 전할 뿐이다. 제목 그대로 ‘이라크에서 유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부른다면 한(恨)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핍박받아온 민족이라는 쿠르드족의 서글픈 삶을 에밀 쿠스트리차 풍의 유쾌한 분위기로 녹여내는 영화. 미르자는 쿠르드족의 정서를 담는 음악을 연주하기로 유명한 노인. 그는 전처 하나레로부터 전갈을 받고 두 아들과 함께 그녀가 살고 있다는 이라크 국경지대의 쿠르드 난민촌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소재를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산적떼를 만나 가진 것을 다 털리거나, 남의 사랑싸움에 끼여들어 난데없는 소동을 겪기도 한다. 3부자가 하나레를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이라크의 폭격으로 주민을 거의 잃은 한 마을에서 미르자는 하나레의 딸을 만나게 된다.

그저 3부자의 시끌벅적한 여행담으로 보였던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표정을 바꾸는 순간은 산 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를 만날 때부터다. 그는 아이들에게 비행기에 관해 설명하면서 ‘비행기의 목적 중 하나는 운송이지만, 다른 하나는 폭격’이라고 설명한다.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일상이 돼버린 이곳에서 비행기나 폭탄의 개념도 우리들의 그것과 다른, 절박한 것이 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3부자는 이 아이들을 상대로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고 그것은 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고향의 노래>는 분노나 증오를 설파하지 않는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터키에 배척받으며, 폭격과 학살을 피해 타의에 의한 유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쿠르드인들의 운명을 아련한 멜로디에 담아 전할 뿐이다. 제목 그대로 ‘이라크에서 유배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부른다면 한(恨)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출품됐고 시카고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글/문석

<친애하는 당신> Blissfully Yours

타이, 2002년, 125분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오후2시 부산2

타이의 독립영화 감독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지난해 <정오의 낯선 물체>로 주목받았던 실험영화 작가. 이 영화는 전작보다는 내러티브에 신경을 썼지만, 여전히 난해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다. 하지만 낯선 침묵과 고요 속에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민의 처지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두 여성의 감정이 보여지면서 영화는 기묘한 의미 망을 띠기 시작한다.

최근 태국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버마인 불법 체류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 버마인으로 태국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는 민은 두명의 타이 여성으로부터 보살핌 받고 있다. 젊은 공장 노동자인 룽은 그를 사랑하고 있다. 중년의 여성 온은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와주고 있지만, 룽과 묘한 대립 관계를 맺고 있다. 룽과 온의 관계는 어찌보면 아들을 둘러싼 고부 갈등이지만, 달리 보면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성의 긴장 같은 느낌도 준다. 영화는 민과 룽이 외딴 곳으로 피크닉을 떠나고, 온과 그의 정부가 그 인근에서 정사를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피부병에 시달리는 민은 이곳에서 몸을 담그고, 룽은 그를 바라본다.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정부가 어딘가로 도망치면서 홀로 남게 된 온은 길을 잃고 헤매다 민과 룽을 발견한다. 그리고 세 사람이 물가에서 따로,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타이의 독립영화 감독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지난해 <정오의 낯선 물체>로 주목받았던 실험영화 작가. 이 영화는 전작보다는 내러티브에 신경을 썼지만, 여전히 난해한 구석이 많은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된지 30분도 지나 제목과 배우들의 이름을 담은 크레딧이 화면에 오르며, 차 앞좌석의 시선으로 달리는 길만을 한참동안 보여주는 등 이 영화의 화법은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다. 감독은 또한 의도적으로 캐릭터 속으로 감정이 이입되지 않도록 지독한 롱숏이나 롱테이크를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낯선 침묵과 고요 속에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민의 처지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두 여성의 감정이 보여지면서 영화는 기묘한 의미 망을 띠기 시작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룽이 민의 성기를 애무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등장하지만(<죽어도 좋아>에서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글/문석

<뻐꾸기> The Cuckoo

러시아, 2002년, 100분

감독 알렉산드르 로고슈킨 오후 5시 부산극장 1관

<뻐꾸기>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이데올로기기가 아닌 포연속에 가려진 인간들의 모습과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다. 특히 이들 세사람이 각기 다른 언어로 완전히 딴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영화전체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삼각관계는 언제나 흥미 진진하다. 세련된 뉴욕의 한 복판 선남선녀의 트라이앵글이 아니라, 인적드문 동네, 죽고 사는 문제가 더욱 절박한 사람들 사이에도 삼각관계의 긴장은 얄궂게도 공평히 피어나고야 만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러시아 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버려진 핀란드 저격수 베이코는 천신만고끝에 사슬을 끊고 근처 인가로 찾아든다. 그러나 그 천막엔 이미 자동차 폭발속에 살아남은 러시아군인 이반이 사미족의 여인 아니의 간호를 받으며 누워있다. 4년동안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아니에겐 그들이 어느나라 군인이던간에, 그저 사내로 보일뿐이다. 하여 젊고 몸집좋은 핀란드산 베이코가 늙고 부실한 러시아산 이반보다 상종가인것은 분명한 사실. 각각 러시아어, 핀란드어, 사미족 부족언어외에는 할수 없는 완전히 꽉 막힌 커뮤니케이션 상황속에서 세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두 남자사이엔 생활력 강하고 활기찬 아니를 둘러싼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1999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체크포인트>로 베를린영화제를 비롯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흥행성적까지 올렸던 러시아 감독 알렉산드르 로고슈킨의 최근작인 <뻐꾸기>는 전작이 그러했듯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이데올로기기가 아닌 포연속에 가려진 인간들의 모습과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다. 특히 이들 세사람이 각기 다른 언어로 완전히 딴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영화전체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시종일관 능청스럽고 건강한 유머의 끈을 놓치 않으며 사뿐 사뿐한 발걸음을 옮기지만 영화는 엔딩에 이르러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주술적인 영상과 꽤나 극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올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글/백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