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파이란> 등 한국 영화 소개, 배우들의 역량 인정받아
1976년, 뉴욕 차이나타운. 서극, 크리스틴 초이, 대릴 친, 피터 초우 등은 아시안 혹은 아시안 아메리칸 필름메이커들의 작품 상영을 위한 센터로서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영화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주된 취지는 재능있는 아시아 감독의 작품에 공식상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특히 주요 영화제나 미국의 배급라인에서 발굴되지 못한 작품들을 해마다 개발하는 것이다.실제로 90년대 이전, 이 영화제는 아시아인이 만든 영화들을 소개하는 몇 안 되는 중요한 창구이기도 했다. 이 영화제가 미국 내 프리미어로 상영한 작품 리스트들을 살펴보면, 리안, 미라 네어, 첸카이거, 강제규, 기타노 다케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에드워드 양 등을 포괄하고 있다. 그리하여 영화제는 올해로 꼭 25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7월19일에서 27일까지의 영화제에서, 필리핀 이슬람 드라마라고 소개된 마릴로 디아즈-압바야 감독의 <뉴문>(New Moon, 2001)과 인도 출신인 딕비야이 싱흐 감독의 12살 소녀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인 <마야>(2001)는 각각 개막작과 폐막작으로 소개되었다. 그외, 아시안 블록버스터라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로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비롯, 야구치 시노부의 <워터 보이즈>, 주성치의 <소림축구>, 유덕화가 주연한 <풀타임 킬러> 등이 있고, 아시아인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할리우드 고전영화로 세실 비 드밀의 <사기꾼>(1915), 새뮤얼 풀러의 <크림슨 기모노>(1959) 등이 포함됐다.평론가 에드 팍은 <무사>와 <파이란>을 가리켜 “올 한국 작품들은 중국 강박에 빠져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들이 출범시킨 아시안 아메리칸 국제영화제의 최대 관객층이며 한류 열풍을 본토에서와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차이니즈 아메리칸엔 매혹적인 표현이다. 상영 결과 역시, 영화제로서는 드물게 전 좌석 매진을 기록, 아시아 스타로 발돋움한 한국 배우들의 역량에 찬사를 표했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올해 선정된 한국작품들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작품들과는 달리 대중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그러나, 25년을 거치면서 확인된 아시아영화의 가능성이 미국 내 직접 배급과 연결되기까지 거쳐야 할 산은 험난하기만 하다. 미국 내 배급과 상영의 중심지이며,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고정적인 팬이 다수 존재하는 뉴욕이라지만, 최근 이와이 순지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 고작 6일 만에 막을 내리고, 스탠리 콴의 최근 화제작 <란유>는 비수기에 1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할 뿐이며,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는 아직도 미국 내 배급사를 찾고 있다. 이미 자국과 해외 영화제에서 검증받은 아시아영화가 미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그저 공염불같이 들린다. <피아노 티처>와 <늦은 결혼> 등의 유럽 예술영화가 3개월 이상씩 롱런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아시아인으로서 미국 내에 동화하는 것이 얼마나 막막하고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8월26일 뉴욕 공식 개봉을 앞둔 김기덕 감독의 <섬>이 얼마만큼의 잠재성을 가지고 뉴욕 예술영화 마니아들을 끌어들일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