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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아주 사소한 사회학] 좋은 록키, 나쁜 록키, 이상한 록키

<록키 발보아>

드디어 5km를 달렸다. 다 달린 건 아니고 2km를 걸었고 3km를 뛰었다. 그것도 4회에 걸쳐. 게다가 러닝머신 위에서. 1분 걷고 2분 달리는 패턴으로 10분이면 1.2~1.3km 정도가 된다. 한 세트가 끝나면 1~2분 정도 근력운동을 하다가 부리나케 다시 러닝머신 위로 올라간다. 나름의 인터벌 운동이다. 아파트 단지 내의 작은 헬스장에서 정오부터 딱 50분간, 유일한 내 취미 활동 시간이다. 사실은 3년째 하고 있는 재활 운동이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만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2019년 9월, 갑자기 왼쪽 무릎이 굽혀지지가 않았다. 소염진통제를 2주 먹으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는 염증이 원래 그런 거라고만 했다. 나도 감기처럼 지나가는 통증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두 번째 통증은 훨씬 강도가 셌다. 굽혀지지 않는 거에 더해 다리를 아예 들지를 못했다. 대중교통은 엄두도 못 내서 가까운 거리조차 운전해서 이동해야 했는데, 차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와 몸이 좌석에 들어간 다음 마지막 동작인 왼쪽 다리가 올라와야 하는데 따라오지 않았다. 아플 때마다 세상 어색한 자세로 걸으니 발목까지 아팠다. 진통제를 최대 용량으로 먹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비싼 MRI를 찍고 여러 의사를 만났지만 진단은 제각각이었다. 한국에서 뼈나 관절이 아프면 원인과 진단이 카오스다. 이 병원 말이 다르고 저 병원 말이 다르다. 이 의사는 운동하고 싶으면 당장 수술하라고 했고, 저 의사는 운동선수도 아닌데 그렇게 무리할 필요 없다며 지켜보자고 했다. 누구는 40대도 수술한다며 응원했고 누구는 40대는 잘 안 하더라면서 우려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하던 2020년과 2021년, 나는 확진자도 접촉자도 아니었지만 자가 격리를 오랫동안 하며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아프기 전, 10년을 록키처럼 달렸다. 영화 <록키>(1976)의 O.S.T인 빌 콘티의 불후의 명곡 <Going the Distance>와 <Gonna Fly Now>를 반복 재생하면서 말이다. 목표한 곳까지 다다르면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오른 후 두손을 번쩍 드는 록키의 시그니처 동작을 따라 했다. 그 뿌듯함, 개운함, 상쾌함이 하루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순간이었지만 그 작은 것들의 반복이 일상을 또 살게 했다. 뒷골목 건달처럼 살아도 마음씨 따뜻한 ‘좋은 록키’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 추억이 내겐 독이었다. 아플 때마다 달리지 못하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어서 달리고 싶었다. 의지는 좋았지만 과잉되니 재활 운동이 매번 어그러졌다. 이쪽 분야의 재활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다. 이게 뭔가 싶은 동작을 죽어라 반복한다. 근력운동을 할 때의 끙끙거림과 유산소운동을 할 때의 헐떡거림은 없다. 그러니 마음은 조급해지고 몸은 서두른다. 단계를 뛰어넘으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엄청난 회복 속도를 보였다고 SNS에 한줄 쓰고 싶다. 2개월에 걸쳐 늘려나가야 할 것을 2주 만에 하려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간다. 반복되는 통증보다 그 몇배나 더하는 우울감이 참으로 괴로웠다.

이런 실수를 몇번이나 반복했다. 2022년 가을, 세상 유행 따위엔 무던한 물리치료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록키가 마지막에 에드리안을 미친 듯이 부른 이유를 아느냐면서 말을 건넨다. “지금껏 모든 상대를 케이오로 이긴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 벨이 울릴 때까지 두발로 서 있다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라면서 다짐한 게 이루어진 거죠. 오찬호씨는 마지막 벨이 언제인가요? 아직 멀었죠? 그때까지 그냥 할 수 있는 걸 천천히 하면 됩니다. 주변 신경 쓰지 말고요.”

1년을 무릎과 발목 주변 근육 강화 훈련만 했다. 이제 아프지 않다면서 뛰어도 되냐고 하니 그는 1년간 안 뛰어서 안 아픈 거니 절대 뛰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러닝머신에서 걷기부터 하라면서 프로그램을 짜줬는데, 느려도 그렇게 느린 걸음이 없었다. 옆의 사람들은 운동에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전력 질주를 하고 있는데, 나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내 목표에 집중했다.

다시 1년이 지나자 뛰어도 된다는 허락이 드디어 떨어졌다. 처음엔 10초였다. 10분이 아니고 10초 말이다. 몇 걸음이면 끝나기에 뛰는 기분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 그 기분 느낄 때가 아니라면서 그는 경고했다. 믿고 따랐다. 50초 걷고 10초 달리다가, 40초 걷고 20초 달렸다. 1분 걷고 1분 달린 날에는 제법 기뻤다. 전체 시간도 늘렸다. 10분에서 20분, 30분 그리고 40분. 중간중간 휴식은 필수였다. 그리고 미세한 통증만 느껴져도 그날은 절대로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나쁜 록키가 되어선 안되는 시기라며 쓸데없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걸 예방하라고 했다. ‘아파도 한 걸음 더’가 아니라 ‘아프면 한 걸음이라도 덜’ 움직이라고 당부하면서.

그러기 어려운 시대다. 우리 주변엔 이상한 록키가 정말 많다. 록키는 따뜻하면서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넌 왜 운동 안 하냐면서 화내고 혼내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조차 ‘PR’하는 현대인들은 무섭다. 달리기하는 걸 자랑하는 사람이 요즘처럼 많았던 적이 있었던가. 여기저기서 달리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거기까지면 문제없겠지만 들뜬 사람은 멈출 줄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을 ‘평소에 달리기 꾸준히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빈약하게 구분한다. 매일 달리는 사람치고 게으른 사람 없다는 따위의 문장이 쉽게 쉽게 쓰인다. 몇년을 걷기 산책조차 못한 나는 늘 숨고 싶었다. 평소에 몸 관리를 못해서 이렇게 된 거라는 식으로 자학했다. 그래서 조금만 괜찮아지면 들떠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주변의 소리에 귀를 닫자 내겐 매일 50분의 기적이 천천히 찾아왔다. 조심스레 언제 10km 마라톤에 도전해도 되는지를 물리치료사에게 물었다. 그는 답한다. 3년 후. 그러면서 한마디를 더한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10km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5km가 5.1km가 되면 그게 승리죠.” 어디서 들었던 말 같아서 물어보니 웃으며 답한다. <록키 발보아>(2006)에서 왜 늙어서 다시 복싱을 하냐며 화를 내는 아들에게 록키가 말한 거란다. 자, 다시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귀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트럼펫 소리가 반복된다. “빠빰~빠~, 빠빰~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