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망국전쟁: 뉴라이트의 시작>(이하 <망국전쟁>)은 윤석열 정권에서 대거 기용된 뉴라이트 인사의 맥을 짚는다. 오래 추적할 것도 없이 이 다큐멘터리가 조명한 그 시작에 이승만 정권이 있다. 91분간의 짧은 다큐멘터리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을 가능한 한 많이 담고자 한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전국역사단체협의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망국전쟁>의 연출자 구진형 감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 필모그래피는 다큐멘터리 <망국전쟁> 한편이다. 어떤 계기로 연출하게 되었나.
지금까지 여러 일을 했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나 애니메이션 기획, 최근까지는 CG 관련 일을 했다. 대학원에서 영상을 공부했고 단편은 여러 편 작업했지만 장편을, 그것도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망국전쟁>은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 기획을 시작해 제작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나는 지난해 10월 말 연출로 뒤늦게 합류하게 됐다.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가 제작사로,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기획과 제작 총괄로 참여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과 전찬일 영화평론가의 의기투합으로 이 기획이 시작됐다. 학부생 시절 영화비평 수업을 들었는데 전찬일 평론가와 연이 이어져왔다. 연출을 맡게 된 후 이덕일 소장에게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시나리오라기보다 학술논문과 역사 서적 그 어디쯤이었다. 제작비 같은 현실적 문제로 완성을 서둘렀다. 원래의 계획은 올해 삼일절에 개봉하는 거였다.
- 처음 계획과 기획 방향은 왜, 어떻게 바뀐 건가.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시나리오의 7할이 바뀌었다. 애초 기획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초기 버전에는 이승만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료들이 정말 많았다. 뉴라이트도 버릴 수 없는 축이었다. 이 사관이 어떻게 시작되었나를 따라가다 보면 이승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 영향은 윤석열 정부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흐름이 담기게 됐다.
- 이승만에서 윤석열 정부까지 이어진 친일 행보와 뉴라이트의 흐름을 조망하는 친절한 교육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발단은 지난해 초 개봉한 <건국전쟁>의 역할이 크다. <망국전쟁>은 그에 대한 카운터로 이승만에 대한 디테일을 담고 있었다. 그렇지만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약간 개요의 성격을 띤 다큐가 됐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으러 상영관에 오지 않을 테니 문제의식 정도만 가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식을 무겁지 않게, 젊은 층이 이 다큐를 쇼츠의 형태로라도 접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편집과 스타일을 기존 다큐와 다른 방향으로 잡았다.
-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 정치인의 AI 영상이 자주 보인다. 트럼프 희화화 문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어떤 고민이 있었나.
코언 형제의 블랙코미디를 좋아하지만 그걸 연출에 사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조감독을 맡은 친구가 지난해 12·3 사태 당시 상황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사태를 보면서 정말 블랙유머로 조롱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AI 영상을 활용한다면 엔딩크레딧에서 뒷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결과적으로 풍자적 코드로 사용하게 됐다.
- 학계에서의 적극적인 반박에 기대기보다 유튜브 친화적인 다큐멘터리로 많은 사람에게 다가서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감은 특히 어디에서, 어떻게 체감했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이용자들의 게시물이나 댓글에서 파시즘에 가까운 극단적 우경화는 이미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내 경험에 빗대어 말하자면 20년 전에도 이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볼 수 있었다. 건국절 논쟁의 경우, 건국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만 있는 건 아니다. 대학 사학과나 법조계에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게 현 상황이었다. 뉴라이트 친일 사관을 지닌 역사학자들이 대거 학계에 편입되면서 역사학계도 사실상 일그러진 부분들이 많다.
- 제목에서부터 <망국전쟁>은 건국절을 주장하는 수정주의 역사관과 전쟁을 선언한다. 그런데 수면 위로 떠올라 논란의 중심에 서려는 의지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이 더욱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부터 나는 대한민국을 깎아내려 폄하한 적이 없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균형과 평등의 개념도 잘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나 역시 이덕일 소장과 같이 대한민국의 역사는 임시정부 수립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보수는 보수라고 볼 수 없다. 이게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심지어 국수주의로도 방향을 틀지 않는다. 청산된 적 없는 친일 행적의 역사를 한번쯤 정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굳은 의지가 제작자에게 있었다.
- 역사 수정주의가 어떻게 다른 역사,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부정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지 등, 논점이 뚜렷한 문제 제기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아쉽다.
동북아 지도 제작 문제나 위안부에 관한 내용도 원안에는 있었다. 이덕일 소장이 쓴 기획에서는 이 모든 사안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었다. 이걸 모두 넣는다면 러닝타임이 3시간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제작비는 모두 사비로 충당하는 현실에서 3, 4부작을 계획하는 것도 무리였으니 우선은 운을 띄우는 다큐멘터리로라도 시작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 사상의 세습, 같은 말인 것 같지만 반대 의미로 역사 인식의 유산은 후손들에게 이어진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상 수상자는 그 국적이 어떻든 나카소네의 신조를 이어받는다. 그래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후손들이 남긴 인터뷰는 숙연해지는 장면이다.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지만 이분들은 늘 그림자처럼 숨어 지내거나 서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다. 다큐멘터리 <여파>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후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나 역시 아주 인상 깊게 보았다. 청산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사는 나치가 처벌받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끔찍한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