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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클로징] 러닝메이트

학원물이 좋다. <약한영웅> 시리즈는 최애작이고, <피라미드 게임>을 모티브로 이 지면에 칼럼도 썼다. 학생 정치는 어떤가. 주애령의 장편 동화 <승리의 비밀>과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갓띵작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러닝메이트>에 빠졌다. 주인공이 러닝메이트를 제의받는 초반에, ‘러닝메이트’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이 기억났다. 전교 회장에 막 당선된 6학년 형이 5학년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한 내게 다가왔다. “너를 찍었다. 러닝메이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는 않았다. 낙선 직후 정말 아까웠던 선거는 중2 때 실장 선거다. 1학년 실장 출신 넷이 붙었다. 투표마다 최하위를 떨어트리는 규칙이었다(다차 투표 형식의 선호투표제?). 이거 무슨 콘클라베도 아니고 5차까지 갔다. 나는 1차에서 2위, 2차와 3차에서 공동 2위였고(1학년 때도 담임이셨던 교사의 한마디, “누군가는 생각을 바꿔야 끝나”), 4차에서 한표가 줄어 3위로 탈락했다(“서, 선생님…”). 흡사 1987년 대선의 김대중이었다. 그는 한국갤럽 여론조사(당시는 비공표)에서 2위를 달리다 최종 3위에 그쳤다. 1차 3위였다가 당선한 녀석은 1987년 김영삼 같았다. 김영삼은 2위였지 않냐고? 선호투표제였으면 이겼다. 다른 후보 지지자 다수에게 2순위로 꼽힐 만했으니까. 그럼 1차에서 2명을 뽑아 결선을 하는 제도였다면? 김대중에게 유리했을 것이다. 김종필에서 김영삼으로의 표심 이동이 줄어 결선은 ‘노태우 대 김대중’이 되었을 테니(물론 거대한 변수가 있다. 김영삼이나 김대중의 승산이 컸다면 전두환 정권은 역대급 부정선거를 자행했을 것 같다). 내게도 그 방식이 유리했다. 알고 있었지만 룰을 정할 때 입을 다물었다. 속 보이잖아. 그다음 부실장 선거는 정반대 양상으로 극적이었다. 출마 의사가 없던 애가 무투표로 추대됐다. 조각 미남에 입을 열면 익살꾼이었다. 1학년 때 한반이었고 나와 친근한 편이었다. ‘앜, 러닝메이트 비슷하게 찍어둘 걸 그랬나?’ 후회는 며칠 가지 않았다. 학급 임원은 하지 않는 게 상팔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부실장이 내게 고민 상담을 요청했다. “너를 가장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가 아직도 가끔 그립다. 진짜 러닝메이트는 선거 뒤에 나오는 법이다(훗날 내가 기초의원이 될 때 선거본부운동 핵심에는 오랜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둘은 중2 때 그 선거의 유권자였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1번 러닝메이트는 누구일까. 우선 ‘기업’, ‘재계’, ‘주주’가 지목된 것 같다. 우편향 한국에서 상대적 극좌인 나도 ‘비즈니스 프렌들리’ 자체는 싫지 않다. 기업의 창의와 혁신을 북돋는 대통령을 기원한다. 다만 몇 가지 우려를 적는다. 첫째, 규제 완화. 대통령 취임사에 ‘성장’이 22회 나오는 동안 ‘복지’, ‘녹색’, ‘탄소중립’은 0회 나오고, ‘규제 완화’는 적극성을 넘어 구체성을 띠고 있다. 생명, 안전, 생태, 인권을 위한 규제는 있어야 한다. 둘째, 기업 주주의 단기적 이익 추구. 배당금 극대화는 노동자 처우, 중장기적 투자, 경영 혁신을 해친다. 셋째, 정경 유착. 다신 없어야 한다. 새 정부 정책의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가려내며 운동화 끈을 묶고 있는 요즘이다. 당신은 무엇을 지지하고 비판할 것인가. 저마다의 노선으로, n명의 러닝메이트가 대통령과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