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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의 아주 사소한 사회학] 숀 베이커 감독의 뜻은 이게 아니었으리라

영화제 초청을 받으면 다른 강연이나 북토크보단 마음이 편하다. 영화 보면서 미리 준비하는 설렘도 있지만, 주관을 듬뿍 넣어서 이런저런 해석을 해도 된다는 자유로움이 좋다. 통계를 언급할 필요도 없고, 학자 이름 들먹이며 잘난 척을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영화 속에 비친 사회의 현실을 꼬집으며 우리의 삶과 연결하면 되는데 그거야 글 쓰고 강연 다니면서 늘 하는 거다. 그래서 사회 고발 성격이 짙은 작품들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보태달라는 부탁을 가끔 받는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동시대 시네아스트로서 숀 베이커 감독을 선정했는데, 나는 감독의 초기작인 <테이크 아웃> (2004)에 대해 다른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섞을 기회를 얻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에서 아이들의 시선으로 노골적인 사회문제를 끄집어낸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2024)에서는 양지로 올라오려던 성매매 노동자가 다시 처참한 음지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아내며 오스카를 휩쓸었다. 영화에 사회적 결을 듬뿍 담는 감독이라는 거다. 나는 차분히 영화를 감상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찾았다.

<테이크 아웃>

<테이크 아웃>은 밤까지 빚을 갚아야 하는 뉴욕의 중국인 노동자가 종일 배달을 하는 단 하루의 내용이다. 영어를 못해서 무시당하고, 배달을 잘못해서 욕먹고, 심지어 강도를 만나 돈도 뺏기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어쩌어찌 해결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감독은 중국 음식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끝없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표현하며 이주노동자의 힘든 현실을 알린다. 영화는 중식당 내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일단 좁다. 뉴욕에서 넓은 식당을 임대할 수 있는 이민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게다가 중식은 뜨거운 직화 요리다. 가스레인지로는 어림도 없다. 공사장 드럼통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활활 솟아올라야 한다. 그런 화로가 좁은 공간에 있으니 보기만 해도 뜨겁고, 덥고, 또 위험하다.

여기서 종일 일해야 한다. 뉴욕에서 중식의 인기는 대단하다. ‘웍’은 미국에 없던 도구였다. 불 위에서 웍질을 하며 만들어내는 불향 가득한 야채볶음밥을 다양성의 도시 뉴욕은 사랑했다. 그러니 주문은 밀려오고, 노동자들은 만들고 배달하고를 쳇바퀴처럼 하며 살아간다. 그래야만 고향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도, 또 미국으로 초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가족처럼 끈끈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감독은 아메리칸드림의 이면을 꼬집는다. 이민자들의 일상 속 파편을 촬영해, 이 조각도 공동체를 완성하는 퍼즐임을 말하고자 했으리라. 주제의식이 선명하니, 내가 말할 지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중국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부터, 영어를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애환, 나아가 불법체류자를 없애버리겠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광폭 행보까지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하지 못했다.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수첩에 몇 가지 메모를 했지만, 계속 논지가 겉돌았다.

<테이크 아웃>

배가 너무 고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볶음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입에는 침이 고이면서 말이다. 감독은 노동자의 고충을 담아내기 위해 뜨거운 불 앞에서 웍질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것이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요리의 향기를 진심으로 느꼈다. 불향이 골고루 입혀진 계란과 양파의 환상적인 조화, 팝콘 같은 밥알이 입에서 이리저리 통통 튈 때의 짜릿함까지 말이다. 아, 여기에 짬뽕 국물을 곁들여 이과두주 한병을 들이켜면 그게 지상낙원이 아니었던가.첫 장면부터 그런 건 아니다. 초반에는 엄청나게 감정이입을 했다. 같은 시기에 나도 신문 배달을 오랫동안 했는지라, 2004년에 보았다면 나는 울면서 리뷰를 작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025년이었다. 음식만 보인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안 보인다. 그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보다 무슨 음식이 나올지만 기대한다. 이거 생각하라는 영화가 아닌 거 아는데도 자꾸 그것만 생각난다. 마치, 그게 본능처럼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만들어진 본능이다. 2004년과 2025년. 그사이엔 많은 일이 있었다. 2005년에 유튜브가 등장했다. 그 유튜브를 시시때때로 보도록 하는 스마트폰은 2010년대가 되어서야 널리 보급되었다. 변화를 적나라하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자면 2004년엔 한국인 누구도 백종원을 몰랐다. 백종원은 10여년 넘게 방송이라는 데는 다 나왔고, 지금도 그 유산은 강렬히 부유한다. TV채널을 돌리면 다들 먹는다. <나혼자 산다>에서도 먹고,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먹고, <전현무계획>에서도 먹는다. 한번 했던 방송이 한번으로 끝나는 시대도 아니다.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한다. 이 채널에서도 하고 저 채널에서도 한다. 노트북으로도 보고, 스마트폰으로 본다.

‘먹방’은 과거와 큰 차이가 나는 단어다. 그건 오랫동안 먹물을 뿌린 듯이 어두운 방을 뜻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먹방살이는, 감옥에서 지독한 독방 생활을 했다는 뜻이었다. 수많은 양심수들이 환기와 조명이 전혀 없는 먹방에서 전향을 강요받았고 민주화 투사들은 배후를 말하면 방에서 나오게 해주겠다는 회유를 당했다. 이 뜻, 지금은 없다. 구글 이미지에 먹방을 검색하면 화려한 음식들이 쏟아진다. 라면 열 봉지를 한번에 끓여놓고 먹는다. 피자 열판을 먹는다. 두개를 동시에 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야만 조회수가 오른다. 인기 많은 영상은, 알아서 세상을 떠돌아 찾지 않아도 내 앞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나도 집필이 힘들 때마다, 중식 요리하는 영상을 목적 없이 틀어놓는다. 불 소리, 기름 소리가 전부지만 놀랍게도 보고 있으면 머리가 단순해진다. 문제는, 그런 게 재충전의 전부가 되다 보니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순간에도 단순해졌다는 거다. 나는 배고픔의 진실을 영화제에서 관객 앞에서 말하는 게 수준 낮아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말했다. 단순한 건 이토록 강렬하다. 절제되지 않는다. 또 영화제에 초청받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