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낚시터에 간다. 알고 보니 그는 낚시 유튜버이다. 조금 더 알고 보니, 그는 배우이다. 배우가 낚시터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잔챙이>를 보고 떠오르는 의문점을 영화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더 많은 ‘떡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호준을 연기한 배우 김호원이 알고 보니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공동 각본가이고, 또 조금 더 알고 보니 실제로 낚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잔챙이>의 자체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는, 마침내 자신의 영화의 배급 총책임자가 되어 극장 관계자와 관객의 마음을 낚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최종적으로 영화와 현실이 뒤섞인 어딘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한 배우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가 이토록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난 후 2년 만의 극장 개봉을 앞둔 그를 만나 그간의 소회에 대해 물었다.
- 가장 바쁜 시기일 것 같다.
2~3주 동안 잠도 거의 못 잘 정도로 피곤한 상태인데 매체 인터뷰는 처음이라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박중하 감독님과 매일 하는 얘기가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였을까’이다. 처음엔 그냥 자체 개봉이니 약소하게 진행해보자 했다. 그런데 개봉 크라우드펀딩이 성사돼서 5개 도시에서 특별 상영 행사를 진행하게 됐고, 또 다른 영화들이 하는 웬만한 것은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A3 포스터와 굿즈까지 준비하는 통에 정말 정신없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 언제 자체 개봉을 결심했나.
사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바로 다음날부터 감독님과 카페에서 배급 계획을 짰었다. 처음엔 당연히 배급사들에 연락을 돌렸었는데 잘 진행되지 않았고, 영진위 개봉 지원에도 탈락하니 선택권이 없었다. 전주 이후 1년~1년 반 사이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하며 감독님과 자금을 모으는 한편,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들었다. 인디그라운드를 통해 백재호 감독님의 상담을 받기도 했고, 올해 자체 개봉한 <부모 바보> 소식을 듣고 이종수 감독님에게 다짜고짜 DM을 보내 만나자고 한 다음에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그분들이 흔쾌히 도와주신 덕분에 힘을 많이 얻어 이렇게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많은 영화들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개봉을 못해 아쉽긴 하지만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걸로 만족하고,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처음 만들 때부터 감독님과 했던 얘기가 있다. 감독님이나 나나 이제 각자 영화 15년 넘게 해온 사람인데 둘이 만든 장편이 잘 안되면 그만둬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렇게 만든 영화로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 영화제까지 초청받기도 하고, 또 관객들로부터 좋은 피드백도 듣다 보니 더욱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감독님과 나의 마인드가 비슷한 게, 영화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배급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까지가 다 영화라고 생각하는 게 있었다. 그 마음이 여전하다면 우리 끝까지 해봅시다, 그러려고 만들었으니까, 했다.
- <잔챙이>는 영화 안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영화다. 영화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배우가 주인공인, 아무래도 자전적인 영화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잔챙이>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가 맞다. 감독님과 장편을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다가 연기를 안 할 땐 주로 낚시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취미 삼아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까지 보여줬더니 감독님이 이걸로 만들어보자고 하더라. 처음에 난 반대했다. 감독님한테 “제가 영화를 많이 봐서 아는데, 낚시터가 배경이면 영화가 기본적으로 우울하고요, 살인 나고요, 불륜 일어나고요. 그래서 안돼요”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자꾸 “아닌데. 배우가 낚시터에서 유튜브를 해? 아, 뭔가 있는데” 하면서 포기하지 않았고, 그러면서 지금의 영화로 조금씩 발전되었다.
- 그렇게 완성된 영화에 무엇을 담고 싶었는가.
<잔챙이>는 결국 호준뿐만이 아닌 극 중 남 감독과 희진의 꿈에 대한 이야기다. 셋 다 꿈이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과 한때 꿈이 있었지만 힘들고 지쳐서 포기한 사람들, 영화 홍보 문구이기도 한 ‘작지만 소중한, 작지만 꿈은 큰’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다.
- 제작 크레딧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데, 제작과 배급 과정 중 어떤 게 더 힘들었는지.
제작 과정은 완전히 혼자가 아니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익숙한 것도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배급 일은 직원 없이 혼자서 처음 해보는 일을 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잔일이 너무 많아 배급사에 직원이 많은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그래도 경험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느낀 것은 배급 입장에서 봤을 때 어떤 영화가 더 관객들에게 잘 도달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 있었던 거다.
- 연기할 때 배급의 측면까지 고려하는 ‘완전체 배우’가 된 건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분명 어떤 식으로든 나의 연기 커리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예비 관객들에게 <잔챙이>가 어떤 영화로 비치기를 원하나.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면 알겠지만, 독립영화지만 독립영화 같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아무래도 독립영화라고 하면 조금 우울하고 어려울 것 같다는 인상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 때도 그랬지만 홍보할 때도 관객들이 <잔챙이>를 재밌는 영화, 그러면서 또 보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 그런 영화로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 마침내 개봉하게 된 지금의 <잔챙이>를 물고기에 비유한다면.
잔챙이를 조금 벗어나고 있는 잔챙이? 작은 저수지에서 조그맣게 태어나 그 정도의 크기가 끝인 줄 알았던 물고기가, 이제 큰 저수지로 옮겨져 거기서 막 “여기 너무 넓어!” 하며 헤엄치고 있는, 그렇게 조금씩 몸을 키워가고 있는 그런 잔챙이 같다.